등록 : 2013.12.03 12:53 수정 : 2014.01.07 10:53

김경아 피리 연주가. 1972년생. 한양대 대학원 음악대학 박사 수료. 중요무형문화재 46호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 1집 <고풍>, 2집 <연정>, 3집 <청풍명월>, 4집 <평조회상>, 5집 <힐링 오브피리> 등 5개 음반을 발매했다.김경아 제공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브런치 음식을 사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법한 젊은 여성에게 물어봅니다. 융합은 뭘까요? ‘퓨전?’ ‘전기전자+화학+정보기술(IT)+신소재=자동차’ 식으로 합친 새로운 산업이 융합입니다. 어느 자동차 회사 광고를 통해 융합, 퓨전을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지난 11월호부터 전통음악과 현대가 섞인 퓨전국악, 국악퓨전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대(前代)에서 후대(後代)로 전해지는 전통(傳統)과 현대적인 것(Contemporary)을 섞어 퓨전음악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새로운 크로스오버 음악은, 연주자 개인이 지향하는 바가 다양하고 그들의 출발점인 전통의 근원도 다르기에 신기한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전통음악은 무엇일까? 꼭 제가 전통이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을 빌려 현재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전통의 논란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한 사회의 전통이 개인들에게 반드시 최대 이익이 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개인들은 이러한 전통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공론장에서 함께 이성을 발휘해 합의를 도출하고, 변화를 유발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 즉, 사회는 그 전통에 대한 비판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입니다.

일반인들에게 국악은 재미없고 지루하며 상업성도 없어 보입니다. 만일 상업성이 있고 재미가 있다면 우리는 주말 지상파 방송의 프라임타임에서 아이돌 그룹 대신 국악 연주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이러한 현상을 방증합니다. 이에 더해 전통문화 중 국악은 인간문화재로 대변되는 ‘엘리트 컬처’(Elite Culture)다보니 그들의 절대 권력에 반해 그들이 주장하는 전통에 의심을 갖는 것은 반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문화재의 전통문화 계승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공론을 형성하고 이성적인 합의를 할 수 없으니 국악은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고, 더 이상의 국악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버마스의 지성을 빌려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힐링 오브 피리>(Healing of Piri)라는 다섯 번째 음반을 만들어 지루하고 재미없는 전통음악, 퓨전국악이 아닌 재미있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피리 연주자 김경아씨를 만나보았습니다.

-피리는 어떠한 연유로 하게 되었는지?

항상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내가 왜 하게 됐을까’ 하고 수도 없이 자문해봤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극을 직접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후일을 기약하며 연극에서 어느 부문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음악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음악을, 특히 전통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지원했습니다. 당시는 악기를 선택해서 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전통음악 하면 떠오르는 것은 판소리·대금·가야금·거문고 등이었는데, 우연히 음악주임인 박문규 선생님이 “너는 피리를 하면 잘할 거야”라며 추천해주셨고, 피리를 선택한 뒤로는 열심히 했습니다.

-피리음악이 현대화·세계화되기 위해서는 국악 음계와 서양 음계, 즉 평균율(Pitch)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해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에 관한 것인데, 피리를 불려면 볼을 불뚝하게 하여 숨을 모은 다음 내몰아 쉬어야 하지요? 피리의 음색은 예쁜데, 그 예쁜 음색과 달리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오래전부터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에 관한 것은 연주자들의 고민거리입니다. ‘슬기둥’이라는 팀에서 연주할 때 스타일, 솔리스트로서의 고민을 가지고 많은 영상을 비교 분석하며 제 나름대로 배워야 할 것, 훈련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등 저는 개인적으로 훈련을 했습니다. 예쁘게 보일 수는 없겠지만,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아직까지도 계속 연습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 현대의 비주얼 음악에 맞는 테크닉과 악기 사용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21세기 전통음악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방법, 연주하는 모습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작업을 마치고 6월에 프로모션을 시작한 <힐링 오브 피리>의 뮤직비디오는 연주하는 앵글, 연주하는 모습 등에 관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전통음악 음계와 서양음악 음계로 공동 작업을 할 때는 음악적 스타일에 대한 흥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하는 거지요. 버리지 못하고 다 가져가고 싶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음악의 스타일을 정의하다보면 멜로디와 리듬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음반에서는 전통음악 음계 중 하나인 메나리조(강원도·경상도의 음악적 특징)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나리조 스케일의 특성을 살리다보면 민요 <한오백년>에 가깝게 되는데, 그 경우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새로운 창작을 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러 형태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작업했습니다. 특히 2005년 KBS 국악관현악단 20주년 협연곡으로 트럼펫 연주자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 작업을 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좋다고 다 가져갈 수 없다”입니다. 크로스오버 음악을 작업할 때 가끔 멜로디와 장단을 쓰기에는 역부족인 음악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다 가져가지 않고 한 가지만 살립니다. 예를 들어, 청국장의 냄새가 강하다면 냄새를 죽이고 짠맛을 줄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지키려 한다면 국악의 음계를 지켜야 하는데, 크로스오버를 하면 피아노 같은 평균율 악기가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전통의 맛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성음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럴 경우에는 평균율을 기둥 삼아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피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스케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새로운 창작이란 부딪히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평균율과 순정률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 필요한 크로스오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음악이 맞는 것일까’ 하고 자문자답을 해보았습니다. 점차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서 어렵지 않지만, 진솔하고, 전통음악의 진액만 빼서, 거부감 없는 음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힐링 오브 피리> 음반을 통해 그러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음반에는 피리, 민요, 정악곡 외에 새로 작업한 음악과 노래가 들어 있습니다. 경기민요를 배웠는데, 경기민요의 고급스러운 스케일이 일반인들에게 촌스러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정선 아리랑>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관객이 <정선 아리랑>을 기억하고 더 원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전통음악은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시는지?

주로 접하는 것은 전통음악이지만, 장르 불문하고 많이 듣습니다. 최근에 감동받은 음악은 조용필의 <바운스>입니다. 조용필의 노래는 예전에 들을 때와 지금 들을 때 느끼는 내용이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미디(MIDI·컴퓨터 음악)로 작업한 음악을 싫어하는데, 조용필의 라이브 음악과 그의 철학적인 생각이 느껴질 때 ‘대단하구나, 좋은 음악이구나’라고 공감이 갑니다. 외국 음악으로는 야니(Yanni)의 것을 듣는데, 그의 음악은 자기 색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음악 속에서 표현해주는 그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 좋습니다. 피리 연주자라서 관악기를 주로 관심 있게 들을 것 같지만, 야니의 공연 비디오를 볼 때는 현악기를 유심히 봅니다. 현악기의 활은 관악기의 호흡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좋아하는 음악가는?

이준호 KBS 상임지휘자는 전통음악의 가장 근원을 부담감 없는 대중화로 잘 전환시키고 있어 좋아합니다. 지금의 작곡가들은 한쪽으로 편중돼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전통의 느낌은 전통이나 시김새를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전통음악가들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호 지휘자는 전통음악 작곡가들 중에 멋과 고급스러움, 흥겨움 등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악가 조수미를 좋아합니다. 정말 노래 잘하고 정교함, 목소리 톤, 타고난 것과 훈련의 경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청중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음악을 전해주는 연주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글 최영준 퓨전뮤직그룹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리더, 서울예대 교수, MBC 판소리 서바이벌 <광대전> 자문위원. 가야금·사물놀이 앱 개발자로 국악의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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