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3 12:39 수정 : 2014.01.07 10:52

12월이다. ‘맨땅에 펀드 2013’이 종료될 것이다. 1년 소진 펀드다.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니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를 더해서 내가 나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섭외는 쉬웠다.

‘맨땅에 펀드 2013’도 이제 막을 내린다. 아직 남은 콩과 매실효소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완판하더라도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 농산물 판매보다는 ‘대한민국 농촌 현실’이라는 콘텐츠를 팔아먹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 않은가. 내년에는 ‘유통’을 화두로 일을 벌여보려고 한다.
- ‘맨땅에 펀드’에 대해 다시 한번 간략하게 정리랄까, 소개를 해달라.

- 연재 첫 회 글 중 일부를 다시 인용하자면, ‘맨땅에 펀드’는 쉽게 말해서 농산물·농부·시골마을에 연간 1계좌 30만원이라는 돈을 투자하고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배당받는 펀드다. 외형적으로 농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펀드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으니 농사 결과에 따라 단 한 톨의 쌀도 배당받지 못할 수 있는 투자 위험 완전 1등급 펀드다.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꾸러미’라는 것과는 차별된다. ‘맨땅에 펀드’의 두 가지 특징은, 소비자가 생산자(공급자)·품목·가격에 대한 선택 또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과 사이트를 통해 주 단위 펀드 상황을 중계한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항상 자신의 돈이 어떻게 허망하게 소진되는지 사이트를 통해 목격할 수 있다. 운영자로서 이 펀드는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대한민국 농촌 현실’이라는 콘텐츠를 팔아먹는 일이다.

- 펀드 규모는?

- 2012년 시작할 때는 100명 3천만원이었고, 2013년엔 334명 1억20만원의 투자금을 가지고 놀고 있다.

-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

-일종의 시비다. 주요하게는 농협, 부차적으로는 지방정부에 시비를 거는 것이다. 농협은 농민과 농업을 위해 존재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금융기관이건 조합이건 성격 규정이 어찌됐든 ‘농민을 위한’ 조직이어야 함은 변함없어야 한다. 시골에 살면서 나 스스로 느낀 점도 그렇고 농부들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농협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농민은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반다나 시바’라는 인도의 환경운동가가 한 말이지만 내 생각과 같아서 인용한다.

“세계화 체제 밑에서 농민은 생산자로서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농민은 이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들이 지역의 유력 지주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을 통해 판매하는 값비싼 종자와 화학물질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 음… 거창한 이야기를 들이대는데, 규모로 봐서는 그들이 위협으로 여길 것 같지 않다.

- 거대 조직을 이기기 위해서 더 거대한 조직을 꾸리는 방식을 원치 않는다. 작은 조직 1천 개가 거대한 조직 하나를 포위하면 된다. 그리고 쓰러질 때까지 계속 두들겨 패면 된다. 아니면 쓰러질 때 우연히 패고 있어도 되고….

- 그래서 2년 동안 ‘맨땅에 펀드’에 동의하는 다른 사례들이 생겨났는가.

- 몇 번 전자우편으로 상담한 경우는 있지만 실제 가동되는 사례를 들은 적은 없다.

- 네 말대로 하자면 남들이 따라할 만도 한데 왜 그 모양인가.

- 이 펀드는 투자자들의 마인드가 이타적이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운영자의 마인드도 이타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상담해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생계수단에 51%의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런 경우는 이미 많이 생겨난 ‘꾸러미 사업’을 조직하는 것이 차라리 맞다. 전체 운용 기금에서 인건비가 25%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펀드 규모가 작다보니 두 사람 정도의 안정적인 연봉을 보장하기 힘들다. 혼자 진행하기는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이 일은 스토리 전달이 중요한데 그것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타 지역에서 유사 펀드가 생겨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작은 조직 1천 개’ 같은 것은 헛소리 아닌가.

-내 말이….

- 2013년 펀드는 계획대로 진행됐는가. 이를테면 그래도 펀드니까 수익률이라거나 뭐 그런 거….

- 사실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다. 우선은 ‘사고치지 말자’는 정도의 목표였다. 농산물이란 것은 어차피 수확 시기가 정해져 있고, 되도록 계절별로 배당할 수 있는 농산물과 그 농사를 짓는 농부를 염두에 두는 정도의 계획이었다. 전체적으로 총액 대비 60% 정도의 농산가공품을 배당하는 데 주력했다. 수익률을 높이는 목표라기보다는 인건비 비중을 총액 대비 25%로 조정하기 위해서 ‘1억원+α’를 필요로 했다. 예상되는 ‘연간 인건비+진행비(밥값 등)’가 3천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에 최소 600만원 정도는 직영 농지의 생산물 판매를 통해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산수를 했다. 뭐, 1년 농사지어서 1천만원의 수익은 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했다.

- 그래서 1천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나.

- 그게 계획은 계획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앉은뱅이 밀을 가공해서 300만원 정도 올리고 감 팔아서 400만원 정도 올리고 콩 수확해서 몇백만원 올리고… 생각했는데, 앉은뱅이 밀과 우리밀 축제로 200만원 가까이 날려먹고 감농사는 완전한 실패해서 약 150만원 정도 적자고 현재 콩과 매실효소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콩과 매실을 완판해도 소액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 우리밀은 농사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면 판매에 실패했는가.

- 나름대로 나 완판남이다.

- 그런데?

- 밀가루와 건국수로 가공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밀 수확량도 많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우리밀 축제’라는 먹고 노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 가공비용 같은 거 미리 산출했을 것 아닌가.

- 그런 거 산출하지 않는다. 그냥 맨땅에 헤딩한다.

- 2013년에는 몇 번이나 배당을 했는가.

- 11월 현재까지 네 번 배당했다. 감자, 오이, 산마늘, 동백꽃, 양배추, 무, 대파, 애호박, 백중밀, 산마늘 장아찌, 꿀, 오디잼, 밀가루, 감을 배당했다. 계획으로는 12월까지 두 번 더 배당할 것이다. 곡물류와 가공품인데 백미, 현미, 수수, 청국장, 매실효소 등이다. 대략 스무 가지의 농산가공품이 택배로 날아갈 것 같다.

- 투자자들은 만족하나.

- 솔직히 알 수 없다. 댓글이나 전자우편으로 표현되는 것만으로 보면 만족도가 높은 것 같은데, 침묵하는 투자자들의 속마음이나 평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지난 연말 2013년 펀드를 모집할 때 최소한의 심사를 했다. 유기농산물에 방점을 찍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 희망자들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지역 농산물을 팔아서 전남 구례군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것이 이 펀드의 목적이 아니다. 대한민국 농촌의 임상 현실을 알리는 것이 더 주요한 목적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처음부터 만족에 대한 기대가 없었거나 무조건 만족하기로 작정한 상태였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 펀드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 ‘맨땅에 펀드’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주로 매체나 공무원이고, 오늘 오전에 우연히 이 펀드를 알게 되어서 오후에 지리산닷컴에 회원 가입을 하고 바로 질문을 던지는 경우들이다.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일목요연한 설명을 원한다. 그러나 ‘맨땅에 펀드’는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계좌 30만원 투자자 334명을 모아서 농사짓는 이야기를 중계하고 농산물을 보내드립니다’라고 프로세스를 짧게 설명하면 ‘아, 농산물 꾸러미 같은 것이군요’라는 대답이 열에 아홉이다. ‘맨땅에 펀드’는 제품이 아니라 ‘생각을 위한 하나의 계기’다. 그 계기를 30만원에 구입하는 것이다. 배당 농산물은 덤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 펀드를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

- 다른 사람의 돈으로 농산물을 대량 쇼핑하면서 홍길동 놀이 하는 것이다.

- 언제 인간 될래?

- 인간은 원래 오묘한 존재다.

- 12월이면 펀드가 종료된다. 2014년 펀드 기획은 정해졌는가. 언제 신규 투자자 모집을 시작하나.

-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심지어 펀드를 2014년에도 지속할지 정하지 않았다.

- 운영자 입장에서 특별히 손해 볼 일도 없는 홍길동 놀인데 왜 고민을 하는가.

- 생계 때문이다. 이 일에 일상의 50% 이상을 투입한다. 어쩌면 이 일이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2012년에는 무임으로 일했고, 올해에는 월 100만원의 임금을 책정했다. 월 100만원 이상의 가치를 내 가슴에 채울 수 있지만 배를 채우지는 못한다.

- 펀드 투자금을 더 키우고 합당한 임금을 책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일이 마치 하나의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모양은 ‘놀이’지 ‘사업’이 아니다.

- 놀이에 치중할 나이가 아닌 것으로 안다.

- 늙어갈수록 놀이가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펀드는 재미있어야 한다. 투자자와 운영자 모두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이 일을 할 이유가 없다.

- 그러면 정말 2013년으로 펀드는 종료될 수도 있겠다.

- 계속 지속 여부를 고민 중이라는 내 말은 새로운 방식의 재미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는 뜻이다. 더해서 진지하게 펀드의 수익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직접 농사짓는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 농사짓지 않고 어떻게 ‘맨땅에 펀드’가 가능한가.

- 우리가, 좁혀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생각 중이다. ‘맨땅에 펀드’를 운영하는 동안 정말 하기 싫었던 일은 농사 자체다. 정확히는 내가 농사에 투입되는 상황이 싫었다. ‘나는 사무직이다’를 아무리 강조해도 결국 눈앞에서 벌어지는 농사에 대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으로만 지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맨땅에 펀드’ 직영 농지 책임자 닉네임 ‘무얼까?’는 가급적이면 나를 부려먹기 위해서 내 차가 사무실 앞 살구나무 아래에 주차해 있는지 항상 살핀다. 본업이 프로그래머이면서 디자이너인 나를 농사로 괴롭힌다. 원래 정보기술(IT) 계통 일에서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는 앙숙이긴 했지만.

- 실행되건 말건 구상하는 2014년 ‘맨땅에 펀드’의 주요한 내용은 뭔가.

- 계속한다면 ‘유통’이 화두가 될 것이다.

- 좀더 구체적으로….

- 외형적으로는 온·오프라인 쇼핑몰을 생각하고 있다. 2013년 펀드의 주요 등장 농부들은 구례로 봐서는 대농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맨땅에 펀드’를 통해 몇몇 농부의 직거래를 원활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 문제의 중심 화두를 직거래에서 공판장으로 바꾸었다. 공판장 시스템은 농민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몰(mall)을 구상 중이다. 공판장으로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모습은 ‘장터’가 될 것이다. 세월에 역행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 주력할 것이다. 그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펀드 스토리의 중심을 이룰 것이다. 장터 이름도 생각해둔 것이 있다.

- 장터 이름이 뭔가.

- 젠장.

- 누구냐 너?

- 나는 농부가 아니다. 원래 직업은 웹디자인을 주력으로 하는 디자이너인데, 최근에는 나의 직업 및 정체성을 스스로 ‘브로커’라고 소개하고 있다. 펀드로만 한정하자면 ‘화이트칼라 농부’라는 신조어를 희망한다. <끝>

글·사진 권산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전공해 웹디자인과 인쇄물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부업으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 7년 전 전남 구례군으로 이사했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디자인 일을 한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아버지의 집> <맨땅에 펀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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