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9:42 수정 : 2014.01.07 10:44

18세기 영국은 인구 팽창으로 인해 먹을 게 늘 부족했다. 맬서스가 그 유명한 ‘인구론’을 주장한 게 바로 이때였는데, R. 베이크웰이란 축산업자는 우수한 양을 만들어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했다. 인간에게 고기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머리도 작고 목도 짧으면서… 가슴과 엉덩이는 엄청나게 큰” 양이 그가 생각한 우수한 양이었다. “우수한 형질의 양을 한 마리 얻으면… 그 양에게서 얻은 자손들을 다시 그 양과 교배시켰다.”(<살인 단백질 이야기>, 73쪽) 이러한 기법을 동종교배라고 하는데, 알다시피 동종교배는 유전질환을 만드는 지름길이어서 대부분의 농부들이 꺼렸다. 하지만 다른 양에 비해 몸무게가 3배가량 증가하는 등 베이크웰의 방법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농부들도 동종교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초래된 재앙은 단순한 유전병 정도가 아니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증상을 나타낸다. …끔찍할 정도로 가려운 듯 보인다는 것… 병이 깊어진 양들은 비틀거리고 뛰어오르고 넘어지다가 마침내 죽었다.”(81쪽) 무엇보다 이 병은 진행이 매우 빨랐고 전염성도 있는 듯했다. 농부들은 이 병을 ‘스크래피’라고 불렀다. 양이 몸을 비벼댄다는 뜻. 그 농부들이 죽은 양의 뇌를 봤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아니 이런! 양들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네?”

1970년대 후반, 영국의 농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순하다고 알려진 젖소들이 사람을 걷어차기 시작했던 것. 그간 젖을 뺏긴 게 억울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증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들이 몸을 떨고 비틀거리며 걷다가 쓰러졌다. …이런 소들은 얼마 못 가서 쓰러져 죽었다.”(260쪽) 이 병의 정체를 추적하던 학자들은 농가에서 ‘케이크’라 불리는 사료를 주목한다. 케이크는 고단백 농축물을 일컫는 말로, 단맛이 나서 소들이 좋아했는지라 농부들은 젖을 짤 때 소가 순하게 굴면 보상으로 케이크를 주곤 했다. 문제는 케이크 안에 포함된 단백질의 정체였다. 그건 “다른 가축, 특히 들판에서 죽어 식용으로 팔리지 못한 동물들의 고기”였다. 초식하는 소를 인위적으로 육식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병이 젖소에서 흔했고, 어린 젖소에서 발생한 이유도 “육우의 송아지는 어미젖을 빨리는 반면 젖소는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놓고 고단백 농축물을 먹”이기 때문이었다.(275쪽) 명색이 젖소인데 자기 새끼에게 젖을 못 먹이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육식하는 소와 더불어 광우병 발생의 원인이 됐다.

소들이 이렇게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영국 정부는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축산업계의 이익을 국민 건강보다 우선시했다. 미친 소에 관한 보고를 받은 수석 수의관의 말을 들어보자.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육우산업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267쪽) 그래서 그는 그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단속했고,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제지했다. 게다가 농부들은 소가 농장에서 죽는 경우에는 식용으로 판매할 수 없었기에 “어지럼병에 걸린 소를 서둘러 시장에 팔아넘겼다”. 영국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방지책을 취한 것은 광우병 발견으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난 뒤였고, 그동안 “감염된 소 20만 마리와 광우병에 걸렸으리라 의심되는 소 60만~160만 마리가 식용으로 가공되어 영국의 슈퍼마켓을 통해 판매됐다.”(259쪽) 그 뒤 광우병에 관한 보도가 대문짝만하게 나가고, 국민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농수산식품부 장관 존 거머가 한 일은 텔레비전에 나가 자신의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얘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1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들의 뇌는 하나같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전세계는 공포에 휩싸였고, 소가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했던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이 사태로 인해 실각했다.

2008년 서울의 봄은 때아닌 촛불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쇠고기 협상에 대한 불만이 그 이유였다. 이웃 일본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반면 우리나라는 ‘(광우병 발생이 잦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에 대한 연령 제한 해제’ ‘검역에서 광우병이 발견돼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 등의 불리한 조항에 동의해줬다. 물론 광우병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감염된 소를 먹은 영국인들 중 광우병에 걸린 이가 소수에 불과한 데서 보듯,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은 종의 장벽을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여기서 소수라는 것은 150명이 적다는 얘기가 아니다. 노출된 건수 6400억 건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다.) 즉 광우병의 위험이 다소 과장된 것도 맞고, 대통령이 이명박인 것도 시위가 예상보다 커진 이유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위가 의미를 갖는 것은 국민 건강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서 지켜야 할 가치임을 깨닫게 해줬다는 점이다. 아무리 극소수가 걸리는 병이라 해도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면 무섭지 않겠는가? 영국의 예에서 보듯 정부가 국민 건강보다 업계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 대재앙이 닥칠 확률은 높아진다. 2008년의 촛불은 국민 스스로 건강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대규모 시위였고, 그 덕분에 우리는 미국에서 30개월 미만의, 더 안전한 소만 수입하게 됐다. 서울 광화문의 촛불을 보면서 영국인은 이렇게 한탄했으리라. “우리도 그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어야 했는데.”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