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9:13 수정 : 2014.01.07 10:43

이태원 해방촌 입구의 한 카페 테라스에서 박정수 연구원(왼쪽)과 음악평론가 나도원씨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한겨레 박승화
“누군지 못 알아보겠어요.”

골목을 오가는 이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 중인 ‘수유너머R’의 박정수 연구원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평소 작업복 차림으로 골목 여기저기에서 ‘작업’을 펼치는 그가 오늘은 반듯한 정장 차림이다. 커피 맛이 좋다며 안내해준 카페에 들어서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도 사실 테라스 청소였다. 자기 가게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 골목 바깥에 나와 있는 화분 같은 것들은 다 이 양반 작품이에요.”

또 다른 행인이 거들며 칭찬했다.

“박정수는 국문학 박사로, 대학에서 교양 국어와 환상문학 등을 강의하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젝의 저작 등 다수의 서적을 번역했고,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등을 집필한 인문학자입니다.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미신고 장애인시설 인권 실태조사’ 사업과 교도소 평화인문학, 지역도서관 인문학 강의 등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야학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플랜코리아’와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복지단체에 6년째 후원해온 민주시민입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초등·중학생들과 더불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으로 나온 ‘G20 쥐 그림’ 인문학

2011년 4월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부에 피고인 박정수(와 최지영)를 위해 제출된 탄원서 내용이다. 2010년 10월31일 새벽 1시께 서울 을지로에서 일단의 무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물 12장에 쥐를 그려넣었다. 박정수 연구원은 G20 포스터를 훼손했다는 이른바 ‘쥐 벽서 사건’의 주범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지만 대부분 잊지 않았을까 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탈주범 이대우 사건이다. 오랜 수사 끝에 발견 신고를 접수하고 그 일대를 수색해 검거하기에 이르렀는데, 알고 보니 오인 신고였다. 그러니까 제보자가 엉뚱한 사람을 보고 신고했는데, 우연히도 그 일대에 정말 이대우가 있었고 경찰이 탈주범을 잡은 것이다. 오인 신고자는 결과적으로 범인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 되어 포상금 일부를 지급받았다고 한다. 이대우를 검거한 경위는 어딘지 상징적이었다. ‘쥐 벽서 사건’도 우리 사회의 미묘한 반영이자 상징이었다. 또한 박정수 본인도 이 사건을 계기로 인문학의 현장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활동가들과도 새롭게 관계 맺게 되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박정수는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구타를 당했다. ‘촌놈’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공부했고, 고등학생 때는 문학청년이 되어 잡지를 만들었다. 때가 때인지라 ‘머지않아 해직될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명동성당 등지에 다녀오기도 했다. 대입시험을 본 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신입생 박정수는 대학교에 들어가 “노동하는 이들을 기억하자”는, 바람직하기 짝이 없는 인사말을 했다. 그러더니 데모를 하고, 공부도 하고, 시도 쓰고, 사랑도 하고, 지하서클 활동도 하는 공작원이 되고, 투옥도 경험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송경동 시인 등과 함께 구로노동자문학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굵직하진 않고 조금씩 할 건 다 한” 20대를 보냈다.

‘촌’의 정서와 1980년대 정서(89학번)를 지닌 학생 박정수는 교육자의 길을 생각하다가 그 안의 권력관계와 위계질서가 천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2002년 ‘수유너머’에 합류한다. 그리고 출퇴근의 용이성을 위해(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와 함께) 2004년 2월 해방촌 내 부암동 버스 종점 근처로 이사했다. 첫인상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같았다고 한다. 병원과 은행 등 편의시설이 있을 건 다 있는데 모두 규모가 작았고, 심지어 버스가 잘도 오가는 길마저 좁았다. 이러한 옛 풍경을 바라보며 살자니 마치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민 박정수는 슬슬 좁고 작은 골목에 매료됐고, 그의 눈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해 5월, ‘촌’사람 박정수 부부의 자녀인 박황매이가 해방‘촌’에서 태어난다.

수유너머R ‘해방 코뮌’을 만들고

“여기 뭐하는 곳이여?”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는 곳입니다.”

“뭘 공부하는데?”

“인문학입니다.”

“그럼 벌이가 되나?”

해방촌에 자리했다가 2011년 3개의 연구공간으로 나뉘어 흩어졌던 ‘수유너머’ 중 ‘수유너머R’가 2013년 성북구 삼선동에서 다시 참견 많고 소문이 빠른 해방촌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전과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외국인 부유층 학교인 센테니얼 크리스천 스쿨(Centennial Christian School) 근처의 빌딩 4층에 자리했던 ‘수유너머’는 공간적으로 고립돼 있었고 동네 사람들과도 섞이지 않았다. 물론 놀이터 공원을 텃밭으로 바꾸어 가꾸는 일도 했지만, 이사와 함께 중단됐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의 일원으로 섞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활동의 지향도 변화했다.

연구원들 중 여럿은 연구소가 해방촌을 떠날 당시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방촌 일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보증금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공동생활을 하며 빈방 하나 정도는 비워놓아 누구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빈집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수유너머R’의 멤버들도 그렇게 사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보니 직장을 따라 거주지를 옮기는 대신 거주지 근처로 직장을 옮기는 구심력이 만들어졌다. 현재의 새 공간을 발견하곤 삼선동 연구소의 계약이 만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덜컥 계약해 6개월이나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전국 지향’에서 ‘지역 지향’으로 변했는데 연구원들 자체가 청소년, 인권, 장애인 그리고 교도소 봉사, 장애인 야학, 아동복지 후원을 해온 이들이라 현장성을 강조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연구자들의 ‘코뮌’은 마을 속 공동체로 확장됐다.

박정수 연구원이 보기에 이 동네는 살기 좋은 곳이다. 어린이들을 돌보는 방식도 아파트촌처럼 그악하지 않고, 외국인 아이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리는 문화를 지녔으며, 장애가 있는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는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렇게 잘 섞이는 동네라서 외국인들도 주민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물론 가끔 한밤에 시끄럽게 파티를 벌이거나 한낮에 옷을 홀딱 벗고 일광욕을 하는 미국인들도 있지만 말이다.

연구소 바로 맞은편에 있는 해방촌 교회 앞은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길거리 사랑방이다. 부침개를 만들어 그들과 나누고 점심도 나누면서 친해졌고, 터줏대감 같은 꽃집 아저씨도 동네 구석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다. 토요일마다 여는 청소년들을 위한 고전강좌 덕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동네에 퍼져나간다. 이제 ‘수유너머R’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골목에 화분 놓기를 허하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빗소리를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자동차 소리, TV 소리,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 같은 온갖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빗소리를 들어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꽃을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어릴 적 소년 박정수는 농사가 싫었지만 어른 박정수는 농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텃밭 가꾸기를 했고 옥상 텃밭에도 관심이 많다. 아마 연구소에 모여서 공부만 했다면 주민들과의 사이에 여전히 벽이 서 있겠지만, 박정수 연구원은 연구소 밖에서 ‘무슨 짓’을 많이 했다. 재활용품과 버려진 용기를 찾아 흙을 담고 꽃을 심어 골목에 내다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특정 정치인을 위한 공작원은 아닌가 하는 시선도 느껴졌다. 관청에서 철마다 꽃을 뽑았다 심었다 하는 빈 화분에 슬쩍 옥수수 씨앗을 뿌려놓기도 했는데, 누가 뭐라 그럴까봐 조마조마했다. 허락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린 탓(‘쥐 벽서’ 사건)에 경찰에 잡혀간 경험까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동네 가로등에 수세미 넝쿨을 걸어놓았을 때엔 어느 주민이 신고하겠다며 불평까지 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새벽 3시, 술을 거하게 마신 옆집 아저씨가 넝쿨을 모두 뽑아버린 것이다. G20 홍보물에 쥐를 그린 도발과는 다른 방식의 저항이었다. 지금은 친해졌지만 주차장에서 술을 마시던 아저씨도 화분 작업에 반대한다며 모두 뽑아버리겠다고 기개를 뽐냈다. 한국인들이 시민의식과 준법정신이 ‘너무’ 투철한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구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민감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칼이 아니라 꽃이 들어와도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의지의 한국인 박정수는 멈추지 않고 미술대 학생들과 함께 해방촌 골목 벽화 작업을 시작했다. 쥐 대신 고양이를 그려넣은 벽화도 그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를 화나게 하는 건 따로 있다. 경찰청 범죄예방사업팀이 범죄율을 낮추겠다며 벽화 사업을 벌인다는 발상에 기가 찼다. 예전에는 허가받지 않은 그라피티를 금지하더니 이제는 거리예술을 범죄율 운운하며 이용하려고 한다. 마을 살리기라며 관에서 주도한 벽화 사업의 결과물 중 하나인 이태원 지도 벽화도 놀라웠다. 거대한 홍보전단지를 벽화로 그려놓은 것이다. 놀이터 공원에 만든 텃밭도 당시엔 녹지과로부터 철거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이유는 위험해서라고 했다. 허락받지 않은 모든 것이 위험하다는 세상이지만 허가받은 모든 것이야말로 따분하다는 박정수 연구원은 대뜸 외친다.

“공무원들에게 예술과 인문학 의무교육을 실시하라!”

시장 접수에 나선, 다 아는 공작원

공유와 공감 없이 벽을 도화지로 삼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박정수 연구원은 자신의 ‘공작’에도 신중하다. 누구나 익숙한 구역의 경계를 낯선 이가 침범하는 데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리 허락을 받는 일은 재미있을 수 없다. 그는 ‘살짝 대보기’ 전술을 채택했다. 이를테면 어느 날 해방촌성당 담벼락 아래에 화분 하나를 슬그머니 가져다놓는다. 그러고는 반응을 본다. 또 어느 날 하나를 더 슬쩍 가져다놓는다. 그랬더니 어느 날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 앞에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씩 늘어난 화분들이 지금은 해방촌 소월로20길에 나란히 도열해 주민들을 미소로 반기고 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이 비효율적으로 보인다고 직선으로 만들어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을 앓는 시대, 산에 터널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구멍을 내고 고개들을 잊어버리는 사회가 서운할 뿐이다. 대관령도, 미시령도, 추풍령도 잊히고 있다. 후손은 명절 동안 불과 하루 이틀 차가 줄었을 뿐인데도 공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서울 이야기를 읽으며 비소 노출을 당연시한 채 살았던 유럽의 귀족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황당해할지 모른다. ‘길’의 의미마저 바꾸어버려 이제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을 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은 사람이 다니면 인도가 되고, 차가 다니면 차도가 되고, 다람쥐가 다니면 다람쥐길이 되고, 지렁이가 다니면 지렁이길이 되지만, 지금의 길은 거의 모두 기계를 위한 길이고, 지금 세상의 기계는 거의 모두 자본을 위해 돌아간다. 기꺼이 이 질서의 일부로 살려는 이들은 제아무리 다수처럼 보인다 해도 적벽의 조조(曹操)군에 지나지 않고, 설령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유방(劉邦)의 동지들과 같은 운명일 뿐이다.

해방‘촌’ 사람 박정수도 어쩌면 사람의 길, 생명의 길을 뚫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경험은 많은 사람을 알게 하고, 그것은 다 삶에 보탬이 되기 마련이다. 집 안에 틀어박혀 몇 수레의 책을 읽은 자보다 여러 경험을 한 사람이 낫다. 수유너머에서 분화한 그룹들, 그리고 해방촌의 수유너머R는 많은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중이다.

박정수 연구원의 공작은 계속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신흥시장이다. 11월9일에는 신흥시장에서 바자회를 연다. 상인들과 친해지면 이 재래시장을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시킬 궁리를 하고 있다. 빛이 드나드는 시장 만들기 같은 것이다. 재래시장이 어두운 이유는 비를 막으려고 설치한 지붕이 햇빛까지 막기 때문인데, 지붕에 페트병으로 만든 형광등을 달아보는 실험을 구상하고 있다.

공작원 박정수는 <푸코와 장애의 통치>를 번역하고 <푸코의 삶과 사유>를 저술하면서도 벌써부터 내년 봄 골목 풍경을 그려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화분으로 꽃의 축을 조성할 계획이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이미 토박이가 되어가는 자녀 매이와 함께, 오늘도 그만의 사투리로 해방촌 공작에 나선다.

“오늘은 뭐 재미난 거 없나?”

글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이매진어워드 선정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 노동당 문화예술위원장이다. <결국, 음악> 등의 책을 썼으며, 지난해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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