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9:01 수정 : 2013.11.11 18:37

아이유에 대한 ‘삼촌’들의 팬덤은 한국 대중음악판에 성인 남성들이 적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현상이다. 자기표현에 소극적이고 서툴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문화적 경험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한겨레 자료
모든 대중문화 텍스트가 그렇지만 노래는,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시대의 정서와 아픔을 담고 그로써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자는 갸륵한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당대의 대중에게 선택되는 노래와 가수는 대개 그런 노릇과 구실을 하기 마련이다. 한 시대를 가로지르는 정서 혹은 감정의 구조는 집합적 경험과 실천의 결과이며, 흔히 말하는 ‘대중성’의 핵심에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 대중적 호응과는 별개의 궤적을 그리듯이, 이른바 음악성이나 예술성은 사회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베스트셀러나 대박 난 영화들이 그렇듯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음악과 그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그들에게 내려진 미학적 판단과 관계없이 상당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연구는 이들의 ‘문화적 의미’를 언급한다.

아이유가 돌아왔다. 멀티 롤 엔터테이너 이지은이 드라마 캐릭터 ‘순신이’에서 가수 ‘아이유’로 돌아온 것이다. 더불어 삼촌들도 복귀했다. 여전히 그들은 매 소절에 “우유빛깔 아이유”를 외치고 간주 중에는 “아이유”를 연호한다. 2008년 <미아>로 데뷔해 올해 5주년을 맞이한 그녀를 축하하기 위한 조공이 쏟아졌다. 삼촌들의 음덕에 힘입어 복귀 곡인 <분홍신>은 발매 2주 만에 유력 케이블 방송과 지상파 방송 3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올 킬’했다. <분홍신>이 표절 의혹에 휩싸여 설왕설래하고는 있지만, 그 인기는 두말할 필요 없이 건재하다.

아이유는 우리 대중음악의 중요한 상징이다. 가수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그 역량을 언급하기 전에 아이유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이는 우리 시대의 문화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흐름과 연결된다. 김연아의 뒤를 이어 ‘국민 여동생’에 등극한 이후 아이유는 이른바 ‘삼촌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다. 물론 이는 대중가요와 대중가수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팬덤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삼촌팬은 아이유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소녀시대·카라·원더걸스의 삼촌팬들도 만만치 않다. 어떤 면에서 아이유는 이 걸그룹들보다 팬 연령층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아이유의 삼촌팬은 걸그룹 삼촌팬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간혹 “아이유에게 삼촌팬이란 이해하기 힘들다. 오빠팬으로 부르자”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니는 걸 보면, 아이유 팬덤은 걸그룹 팬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측면이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이유는 자기 세대를 뛰어넘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요즘 시절의 보기 드문 여성 솔로 가수다.

‘삼촌팬’이라는 말은 어린 여자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윗세대의 남성 팬을 일컫는다.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여가수에게 관심 갖는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성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기도 한다. 장년층 성인 남성이 지닌 막강한 ‘화력’(자원동원력, 특히 조공을 위한 자금동원력을 일컫는 팬덤 용어)과 지원 때문에 ‘원조교제’ 상황에 빗대어 남성의 건전치 못한 욕망의 증후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삼촌팬 당사자들은 그들의 팬덤이 통상적인 건전한 대중문화 향유에 지나지 않는다며 억울해한다. ‘불펜’(연식 좀 되신 남성이 많이 모이는, 삼촌들의 디시인사이드(DC))에 물어보면 대부분 이모팬보다야 삼촌팬이 훨씬 건전하다 하겠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인식은 그 바람과는 반대인 것 같다.

아이유 팬덤 그리고 삼촌팬의 등장은 1990년대에 시작해서 20여 년에 걸쳐 재편된 대중음악판에 그들 세대가 적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과정의 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20년간 아이돌들은 퍼포먼스 중심의 반쪽짜리 아티스트에서 벗어나 가수 혹은 뮤지션으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은 물론 OSMU(One Source Multi Use)를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진화해왔다. 이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에게 먼저 마음을 연 건 지금 이모팬이 된 누나들이었고, 이제 뒤늦게 삼촌들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우리 대중음악계는 장르음악의 기반이 취약하다. 따라서 음악과 아티스트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상당히 제약된다. 물론 소수의 팬과 깊게 소통하는 아티스트가 상당수 존재하지만, 이들의 문화적 의미는 대중음악의 지배적 장면과는 다른 수준에서 논의돼야 한다. 대중음악의 지배적인 흐름은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세대는 그 음악적 취향과 요구를 외면당했다. 그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이 언급한 아이돌 팬덤의 주역들은 누나팬에 이어 이모팬으로 재소환되면서 대중음악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소 자기표현에 소극적이고 서툴던 성인 남성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DC와 같은 인터넷 폐인으로 독특한 문화적 풍경을 형성하며 나름의 독특한 표현 양식을 완성해왔다. ‘빠순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아이돌 팬덤을 공격하던 군필자들이 드디어 스스로 ‘빠돌이’임을 자처하게 된 것은 그러한 문화적 경험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대단한 사건이다.

아이유 그리고 아이유 팬덤은 이런 면에서 우리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연기도 잘하는 어린 멀티 롤 엔터테이너들이 즐비하고 세대를 가로질러 이들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우리의 대중문화 상황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아이유는 충분한 자격과 가치를 지닌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음악적 성취를 평가하는 것과 다른 문제고, 이에 대한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장면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뒤틀림이나 심한 쏠림을 고려한다면 이 유력한 아이콘의 가치 또한 긍정적으로만은 평가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중문화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문화적 실천의 성취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서 있는 문화적 배경인 것이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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