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8:41 수정 : 2014.01.07 10:40

며칠 전 탈북자 친구가 내게 “탈북자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나도 올해는 탈북자에게 심한 역풍이 분 한 해였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지난 1월 탈북자를 지원하는 한국인과 탈북자가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 화제의 중심은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 사건’이었다. 이들이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간첩 용의자인 유아무개씨가 순수한 북한 인민이 아니라 북한에 거주했던 화교인데 언론에서 ‘탈북’이라고 지칭하면 탈북자 사회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 우려된다는 거였다.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이 보도된 시기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사실 간첩 사건 용의자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취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복수의 탈북자가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공안 당국이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춘 1월에 발표한 것이다. 정부 쪽이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그 여파가 고스란히 탈북자 사회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 이 사건이 터진 뒤 지난 4월 북한 정부가 개성공단의 조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9월에 조업이 재개됐지만 많은 기업이 손해를 입었다. 게다가 올해는 북한에 재입국한 탈북자가 많았다. 북한에서 탈북자 기자회견이 세 번 열렸고, 한국에서의 불행한 생활을 고백한 탈북자가 8명이나 됐다. 이 때문에 언론 보도를 보고 ‘이렇게 잘 돌봐줬는데, 뭐야?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불만이야?’ 하는, 탈북자를 비난하는 한국인들의 소리가 유독 컸던 것 같다.

‘공무원 간첩 사건’ 탈북자에게 역풍?

탈북자들이 우려하는 배경엔 언론의 보도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 언론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당연히 떠들썩하게 다뤘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국가정보원이 간첩 사건 용의자 유씨를 체포했다고 발표했을 때 보수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 주요 신문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유씨가 간첩이라는 발표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탈북한 사람이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간첩 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일부 사실을 취한 언론의 ‘불공평한’ 보도가 마치 진실인 양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건 당연했다.

현재 이 사건은 지난 8월 1심 판결에서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선고받고, 2심은 11월에 공판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해서는 많은 이들이 탈북자 간첩이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이도 많다. 그 이유는 무죄 선고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주목도가 낮게 다뤄져 일반 시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결론은 ‘탈북자 간첩’과 관련해 언론이 이를 다루는 태도와 기사 분량, 취급 빈도에 따라 용의자는 졸지에 간첩으로 몰렸고, 그 여파로 북한이나 탈북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한국 사회와 시민들에게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언론만의 문제일까. 물론 아니다. 신문이든 텔레비전이든, 보수든 진보든, 한국 내에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구독과 시청을 전제로 한다. 언론으로서는 시민의 수요가 있는 정보와 기사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만약 시민들이 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되기 이전인 용의자 단계의 범죄 및 개인 정보를 언론이 다루는 태도에 대해 명예훼손이라고 여겨 강하게 거부한다면 당연히 이런 보도 행태는 사라질 것이다. 또한 용의자가 재판 과정에서 받은 무죄 등의 형량 정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론이 북한 전반에 대한 보도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행태 역시 북한에 대한 부정적 뉴스를 접하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언론이 “신체장애인이 경제적으로 보면 사회공헌도가 낮기 때문에 해악이다”라고 보도한다면, 그 매체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음에도 언론이 그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우리 모두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일반 시민의 양심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거나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인물과 사건의 접근을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거나 경계하는 인식이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언론이 시민들의 이기적인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간첩 사건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큼지막하게 보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간첩 사건 보도 행태를 언론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건 타당하지 않다. 또한 이러한 시민의 특성이 비단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도, 미국에도 이런 인식에는 별 차이가 없다.

어찌됐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보도 이후 탈북자들은 어떤 역풍을 맞았을까. 주변의 여러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응답자의 3분의 2는 “조금씩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탈북자에 대한 시선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지역민에 마음 연 사람들에겐 미풍

대구에 정착한 지 6년 된 탈북자 친구가 있다. 그녀는 9살 딸을 서울의 학교에 맡긴 채 직장을 다니며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처럼 중국 생활을 피할 수 없었던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이라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도 그 인생 노정은 안전한 나라에서 살아온 나 같은 자의 상상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것이다. 함경북도 출신인 그녀는 서울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정착지로 지방도시를 희망했다. 물론 대구가 보수적인 동네인 것을 알 리 없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자신에게 선입견을 갖고 거리를 두는 게 느껴져 ‘왜 이런 곳에 와버렸나?’ 생각하기도 했다. 대개 이런 경우라면 이사를 하거나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 마련인데, 아이가 있는 그녀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이 동네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열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과의 거리감이 점점 없어졌다.

그녀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벽을 만들지 않는 타입이기도 하다. 어느 날 내가 대구에 온다는 것을 알고 한 번밖에 만난 적 없는 내게 그녀는 “선생, 제 딸이 서울에 있는데 데리고 와주지 않겠어요? 딸은 괜찮아요. 함께 따라올 거예요”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 그녀를 돕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취직을 앞둔 그녀에게 최근 탈북자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비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토익(TOEIC) 900점, 중국어도 할 수 있다고 하면 취직도 간단하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중소기업이라도 갈 수 있으면 거기서 일하려고 해요. 제가 크게 직장을 가리지 않는다면 일할 곳은 있으니까요.”

한국 사회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녀는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큰 무기는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간첩 사건, 남북 경색 국면 등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내게 주는 영향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내 주변엔 서울 도심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이 있다. 그녀는 고생해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인들이 통일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기가 편하게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한국인’이 한국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일하면서 회사 또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것 같은 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일에 대한 자세가 너무 달라 지치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하거나 일을 아예 못한다고 단정지어서….” 한국인으로 잘 살기를 희망했던 그녀는 이런 한국인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효율성을 생각하면 탈북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을 데려와 대처하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한국인들의 태도를 접할 때마다 그녀는 “해봐도 좋습니까?”라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그리고 그만큼 노력했다. 그 결과 “어머나, 한국인보다 잘하네”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그녀의 업무 의지와 능력은 더욱 향상됐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면 북한 생활에 대해 나쁘게 추억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녀가 탈북한 목적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농촌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북한을 고향으로 소중히 생각한다.

그녀도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영향은 없다”고 하는 사람이다. “지난주 동생이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나왔다”고 해서 함께 차를 마셨다. 자신은 회계사가 되기 위해, 여동생은 전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전문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30대에 대학에 들어가는 게 낭비 같으니, 실제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해야죠.” 꿈도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 그녀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조선족 친구가 많은 어떤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족에 대한 대우와 비교하면 탈북자는 불만을 품을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민족인데 조선족이 우리보다 오히려 불쌍해 보여요. 제도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눈앞에서 고생하는 조선족 친구에 비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에 노력하면 조금씩이라도 성과가 나오는 것을 느껴요.” 글을 잘 쓰는 그녀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출간되지 않았다. 북한의 소박한 정서와 한국의 감각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힘내어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중학생 딸과 함께 생활하는 그녀는 “우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더 이상 요구할 생각이 없다”며 “간첩 사건 등의 언론 보도 여파는 현실 생활과 전혀 상관이 없고 전체 탈북자의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언급한 3명의 여성 탈북자는 “남한 내에서 탈북자에 대한 시선이 좋아지고 있다”고 답한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느끼는 것과 별개로 일련의 사건들이 탈북자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채용 등 낯선 탈북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 언론의 보도 행태가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언급한 탈북자들이 ‘간첩 사건’의 여파로 인한 변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착실하게 노력하는 탈북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변은 좋아지고 있다고 실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탈북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확인한 뒤, 이들이 확실히 올바른 민주주의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고 여겨서 기뻤다. 북한에서 정부의 명령으로 ‘환경을 강요당해서’ 생활했던 이들이 한국에 와서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는’ 힘을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말을 썼는데, 이는 ‘불평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올해처럼 탈북자에게 악조건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우연히 이런 시기에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고생을 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결실을 맺을 때가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못해 들어간 작은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탈북자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 올해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아는 척하며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문제점에 민감해 대국을 잃다

연구를 하고 있거나 끊임없이 문제점을 응시하고 있으면 주목할 필요가 없는 문제에 집착하는 일이 생긴다. 학자 세계에 빠져 있으면 작은 문제점을 파내면서 대국을 잃는 일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올해의 사건들에 대한 나의 시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살다보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습관을 갖게 되고,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개척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탈북자들과 만난 뒤 불평불만을 하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을 성실히 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깨닫고 반성했다.

문득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북에서 온 주민들이 결코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온 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거다. 이들은 중국에서 몇 년씩 몸을 숨기며 살았고, 수백km의 길을 어린아이와 함께 걷고 또 강을 건넜다. 이들은 그만큼 강하다. 탈북자 지원은 이들이 살아갈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돕고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경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 아닐까? 실제 “지원을 받아 상처받을 때가 있다”고 말하는 탈북자가 많다. 탈북자들의 힘을 신뢰하지 않고 불필요한 지원을 하면서, 이들에게 교만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인이 간혹 있다. 그렇다면 역효과다. 탈북자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탈북자가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이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에서 좋은 변화가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에게 관심을 갖거나 혹은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탈북자의 활동에 자연스럽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글 와다 신스케 일본 교토대학에서 삼림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자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맥을 만들기 위해 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미식축구 전 일본 우승 두 번, 2011년 미식축구 한국대표팀 코치를 지냈다. 일본 사람으로서 탈북자를 통한 남북통일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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