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5:37 수정 : 2013.10.09 20:14

하나의 허벅지가 낯선 허벅지와 겨뤄 열어내는 창조적 공간. 잘 짜인 오와 열을 단숨에 무너뜨리며 선이 되어 질주하는 개인의 역동성. 그리고 최후의 한계와 맞서는 외로운 단독자를 향해 날리는 궁극의 한 점까지.

누군가는 축구를 ‘가장 원초적인 그러나 가장 분명한 신체의 기억을 향한 쟁투’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개인과 민족, 시장과 국가 그리고 기술의 통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의 총체’라고도 했다. 무엇을 상상하건 축구는 언제나 그 이상의 움직임과 최상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놀이다. 그리고 이 최고의 놀이를 향유하는 국내의 지형은 한참 더 복잡하다. 한국 사회에서 축구는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가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며 거의 매 순간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는 흥미로운 문화적 전장이다.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왼쪽 두 번째)이 지난 7월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선수권대회’의 대한민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경기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영광은 불과 얼마 전까지(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정몽준’이라는 전근대적 군주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전근대적 군주의 지배하에 근대적 방식의 ‘규율’과 ‘통제’가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훈련’으로 찬양받는 문화적 풍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축구를 수용하는 개인들은 이에 비해 너무나 자발적인 주체다. 내일 출근을 할지언정 오늘 새벽의 유럽 축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유인이 축구라는 세계 속에서 전근대적 지배와 근대적 방식과 또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어찌 보면 불협한 이 체계에서 축구는 야구와의 경쟁에서 점점 쇠퇴하는 듯도 하지만, ‘국가’의 호명이 발생하면 여전히 전 국민의 응시를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종목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엄격한 축구의 질서 속에서 판타지 스타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각각의 요구에 적합한 이들이 간택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예컨대 차범근의 도약은 개인의 역량만이 아닌 아시아적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누군가를 보고픈 욕망에 부응해 가능했다. 김주성의 시대는 아시아 바깥은 아니더라도 여기서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는 주술적 기대감과 일치했다. 박지성의 영광 역시 세계를 향한 민족의 자존감과 그의 ‘클럽’이 일치하면서 극에 달했다. 그 전근대적 회로 속에서 그들은 당대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피지컬로 어필하는 선수였단 공통점도 있다. 차범근의 허벅지, 김주성의 돌파력, 박지성의 심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같은 코드로 그들이 근대적 훈련 양식에 가장 적합한 영웅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사내, 홍명보는 조금 다르다. 차범근 시대의 끝자락과 박지성 시대의 앞자락을 함께한 이 불세출의 플레이어는 한국 축구 역사의 전체를 관통하는 유일한 ‘리베로’(Libero)였다. 리베로는 이탈리어로 ‘자유인’이란 뜻이다. 그 문맥 그대로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자유를 누린 ‘플레이어’였고, 늘 최후에서 상황을 관망하다 결정적인 한순간의 침투로 한국 축구의 영광을 존속시키던 ‘히어로’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히딩크의 시절까지, 홍명보는 언제나 우리 팀의 최후에 서는 최상의 플레이어였다. 희한하리만큼 골키퍼가 약체였던 1990년대 홍명보는 실질적인 맨 마지막이었고, 그가 무너진다는 건 곧 실점을 의미했다. 세계적 조류에 부합하는 포메이션을 도입했던 히딩크 시절에조차 그는 극단적인 무표정으로 최후의 선을 지켰고, 여전하던 3-5-2 시스템에서 후방 꼭짓점을 맡은 그의 아우라에선 종종 모든 것을 초월한 비장미가 풍기기도 했다.

선수로서 거의 모든 것을 누렸던 그 이후, 한국 축구에서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리베로라는 포지션은 현대 축구에선 꽤 오래전에 사라진 개념이다. 리베로는 압도적인 한 개인의 기량을 근거로 시스템 밖에 절대자를 상정하는 개념인데, 애석하게도 그런 개인은 매 시대에 출현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협업’을 무기로 패스하며 돌진해오는 복수를 혼자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낭만이다. 홀로 길목을 지켜 속공을 저지하기엔 현대 축구는 너무 빨라졌고, 흐름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해졌다.

이 격변을 두 발로 딛고 견디며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비감과 영광을 묵묵히 지켜냈다. 세계 축구의 단단한 벽과 마주했던 1990년 월드컵, 잘 다듬어진 시스템에 용기와 패기만으로 도전할 순 없다는 걸 알게 해준 1994년 월드컵, 우리는 아직 세계의 일원이 되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절망감을 안겨준 1998년 월드컵, 그리고 더 이상 말할 나위 없는 2002년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한국 축구 자체였고 피치(경기장)에서 가장 유연하고 능숙한 움직임을 보여주던 자유인이었다.

홍명보가 나이듦의 순리에 따라 피치가 아닌 벤치에서 경기에 참여하게 된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절대군주 시절 한국 축구의 상징이던 그는 은퇴 이후 남들보다 비교적 쉽고 편하게 안정적 경로를 걸어왔다. 그에 대한 아쉬움과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2012년 올림픽을 통해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그의 무표정을 향한 대중의 ‘신뢰’는 여전하고, 난파 직전의 한국 축구는 이제 그가 아니면 다른 플랜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월드컵을 향해 가는 홍명보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족한 시간과 정돈되지 않은 포지션 속에서 그가 어디까지 성취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그가 ‘리베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제 전근대와 근대와 현대의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지도자다. 지난 올림픽에서 그는 근대적 방식의 접근이 이룰 수 있는 최대치를 이미 보여줬다. 그것은 그가 축구를 해온 시절의 지배적 질서이기도 하고, 그에게 가장 영광스러웠던 2002년의 시스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They are Professional’(그들은 프로다)이란 말로 정의할 수 있는 멤버들을 이끌고 있다. 멤버들 가운데는 그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가 다수를 이룬다. 어찌 보면 모두가 리베로적 속성을 지닌 개인들을 이제 ‘시스템’으로 묶어내는 것이 그의 과제다.

‘절대자’의 엄호 속에 ‘질서’를 상징하는 묵묵함이 아닌 그가 피치에서 보여줬던 자유로움이 그의 지도 철학에 근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가 여전히 홀로 자유로운 리베로를 자처하며 나머지 모두를 그의 지배하에 두려 한다면 한국 축구의 역동성은 다시 그만 홀로 자유롭던 시절로 퇴행할 것이다. ‘리베로’의 영어식 표현은 ‘스위퍼’(Sweeper), 즉 청소부다. 부디 그가 구시대의 낡은 관행을 끝내 모두 쓸어버리는 영웅이 되길 기대해본다.

글 김완 서울 청량리에서 태어나 청량리에서 자랐다. 충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를 학교 삼아 다녔고, 이후 문화연대에서 ‘변두리’를 메인 이슈 삼아 활동했다. 현재는 매체비평지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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