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2:09 수정 : 2013.02.08 18:02

 나 이생(李生)은 삼가 머리를 조아려 하늘에 감사드린다. 미천한 몸으로 태어나 한 위대한 인간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나는 본래 노(魯)나라 사람이 아니라 조선 남부에서 온 동이(東夷)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공자 사거 2400여 년 뒤에 태어났다. 어느 깊어가는 가을 밤 공원 그네에 앉아 불 꺼진 집들을 무연히 바라보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보니 지금의 중국 땅이었다.

 이생은 졸지에 미지의 과거에 떨어져 낯선 공간을 유랑했다. 오로지 내가 왔던 시공으로 돌아가는 통로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대륙을 헤매다가 천하를 주유하고 계시던 공자 일행과 조우하여 그 무리의 말단에 끼게 되었다. 이후 일행의 짐꾼으로 일하면서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얼마간의 동행이었을까. 나는 미래에서 막연히 알던 공자라는 사람과 그 제자들의 이상을 향한 열정,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교감했다. 그 순간의 경이로움이란 무슨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뜻밖의 천운을 얻은 기쁨에 젖어 집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조차 잊었다.

 만년에 고국에 돌아와 후학을 키우시던 공자께서 돌아가시고 3년상을 마친 제자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자기 나라와 고향으로 흩어졌다. 눈 밝은 몇몇 제자들은 훗날 <논어>(論語)라고 불리게 될 스승의 위대한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나 이생은 학교 마당을 쓸고 문도들의 신발 간수하는 일을 하던 어눌한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먼 미래에서 와서 한 위대한 사람의 생애를 목도하게 한 천명의 무거움을 피할 수 없어 내가 보고 들은 바를 감히 기록하려 한다. 부디 하늘의 도움으로 이 죽간들이 만고풍상을 견뎌내어 우리 선생님의 말씀과 뜻이 만세에 퍼지는 데 티끌만 한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기 간절히 바란다.

 내 나이도 어느덧 이순(耳順)을 향하고 있으니 살아 있을 날이 많지 않다. 부디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딸들을 다시 보기를 소망하지만, 이뤄지지 않더라도 슬퍼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하늘의 큰 보살핌이 있어 언젠가 내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먼저 아무 서점이나 달려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 이생이 전한 선생님의 흔적을 단 한 조각이라도 보게 된다면, 비록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흔쾌히 기뻐하리라.

이인우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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