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2 11:13 수정 : 2013.09.02 14:26

갑작스러웠다. 당초 ‘이태원 연대기’는 한 출판사의 단 행본에서 ‘이태원 프로젝트’의 일부로 긴 호흡으로 구상되 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바람이 서늘해질 무렵, 새로 창간하 는 월간지의 연재물로 바로 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제안 때문만이 아니라 그 월간지 의 이름이 ‘나·들’이었던 것이다. 1994년부터 ‘나들’이란 개 념을 세계관 중 하나로 세워놓았고, 지난 5년 동안 틈틈이 쓰고 있는 여행기 겸 수상록의 한 장을 통째로 ‘나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었다. 물론 <나·들> 창간사를 보고 개 념은 비슷하나 내용은 다르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그리고 기묘했다. 이름을 ‘나들’(羅들)이라 진작에 지어 놓은 딸아이가 <나·들> 창간과 함께 태어났고, 나는 이 지 면에 연재를 시작했다.

이 독특한,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사 연은 곧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태원에서 나고 자란 그래픽아티스트 ‘반달’과 오랫동안 옷가게를 운영해온 ‘틴 틴’형은 그곳에 대한 애정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음악평론 가 박은석은 이태원 주민으로 살면서도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고, 오타쿠 좌파 김민하는 외부인의 시선과 내부 발견 자의 태도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언론인 이광호에겐 이태원이 청춘의 무대였고, 기타리스트 ‘블루비’에겐 성장의 놀이터였다. 종점수다방의 황혜원은 동네를 밑바닥부터 가꿨으며, 신발 장인 슈즈박의 얼굴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사실 이들은 이태원이라는 공동 지역을 제외하면 서로 무관한 사람들일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나들’의 한 국면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이 늘 진실은 아니다. 다양한 역사와 모습으로 이루어진 이태원과 20세기에서 21세기에 걸쳐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속을 사는 사람들은 다른 차원에서는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 <맨 온 파이어>에서 소녀 납치에 가담했거나 돈을 가로챈 부패 경찰들은 크리스(덴젤 워싱턴)에게 응징당할 때마다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기 일을 했을 뿐’이기에 죄인이 되고 말았다.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이기에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부류는 군인과 경찰, 핵 기술자, 철거업자, 금융업자,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식 ‘투기’와 부동산 차익에 연연하며 돈을 굴려 덩치를 키우는 프로는 사실 포로일 뿐이다. 선한 얼굴의 금융회사 직원들은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자기 일에 충실한 덕에 어떤 가정을 파괴하고 가장을 자살로 내모는 ‘얼굴 없는 잔인성’을 실천해버렸다. 여신의 질투 어린 저주로 괴물이 돼버린 미녀, 메두사처럼 누구든 원치 않게 악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판에서 종횡무진하는 말도 장기판 밖에선 아이들의 놀잇감이 될 뿐이다. 많은 사회인이 물고기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도록 목을 동여맨 새를 이용하는 가마우지 낚시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물론 맡은 배역은 어부가 아니다!

 

시공간으로 연결된 나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당시로선 흔치 않게 채식을 했고, 음주를 하지 않았으며, 평생 비혼을 고집했다. 음악과 미술, 영화, 건축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정치인이 되었고, 그가 속한 정당은 동물보호법의 선례를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피폐한 경제를 부흥시키고 유럽에서 최초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바그너를 특별히 좋아한 그는 죽는 날에야 오랜 연인과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동반 자살했다. 아돌프 히틀러이다. 역사 속에는 비슷한 살육을 저지르고도 승자가 되거나, 패자이면서도 뒤에 숨어 그럴 듯한 초상화로 기억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유명한 독재자들은 대개 경제 부흥과 국민 지지라는 공(功)이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랬으며, 박정희가 그랬다. 그들의 공과(功過)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사회 체제와 근본 가치관에서 분라한 개인적 생활방식 습관과 취향은 이토록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이룩한 성공과 업적이라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병사가 나치 독일에게 받은 훈장 같다. 그 영광은 곧 부질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불명예가 되고- 그저 패전국 전사자들의 묘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뿐이다.

이태원의 구성원들 역시 개별적 인간, 즉 개인이 아니다. 단지 그들 모두 한번쯤은 54계단, 63계단, 87계단, 88계단을 오르내렸기 때문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있어도 결국 시대와 공간을 함께 만들어놓았다.

 

이태원의 나들을 넘어

세상은 고맙게도 큰 굴과 덩치 큰 물고기를 원하는 만큼 주었다. 굴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줄지 않는 기적은 수산물을 좋아하는 내겐 행복한 일이다. 굴비도 흔해졌다. 사치스럽게도 이마에 다이아몬드를 끼고 있으면 국산이라지만, 중국 어선의 활동 범위를 생각하면 의아한 구별법이다. 그보다 자연산과 양식의 차별이 더 흥미롭다. 자연산 여부에 따라 다이아몬드도 보석이 되거나 공업용이 되고, 일종의 양식산인 인삼보다 산삼이 귀한 대접을 받으니 자연산이 더 좋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양식되는 건 우리다. 아이들은 더 커지고 하얘졌다. 양식된 굴처럼! 이태원역 주변을 오가는 자동차들처럼 부지런한 사회는 자신의 미덕을 빠르게 전파했다. 한때 그토록 강조한 절약과 검소는 특별한 경우로 한정된 대신 소비하라고 다그친다. 소비가 줄어들면 주름이 느는 나라를 위해서라도 필수품이 된 사치품처럼 쓸모없는 물건을 빚(카드·할부·대출)으로 사주는 도전적인 생활방식이 자연스러워졌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돈더미 위에 누워 있으니 얼마나 푹신푹신할까. 강 아래 지하로부터 세워진 높은 호화 분묘에 들어가거나 거리낌 없이 위화감을 조성하는 걸 영예로 여기기도 한다.

오늘도 이태원에는 상품과 인간이 끊임없이 유통되고 있다. 새로 지은 아파트의 101호부터 1804호까지 온갖 사료가 공급되고, 내일이면 그만큼의 쓰레기와 분뇨가 배출될 것이다. 비대한 육식 공룡들의 양식장에선 초식동물과 원주민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안부를 묻는 만남의 장이던 시장에선 이제 물건을 실은 카트의 운전자들이 무심히 주행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건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의 사체만이 아니다(그들은 20년까지도 살 수 있으나 6개월이면 요절해야 한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이매진어워드 선정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 노동당 문화예술위원장이다. <결국, 음악> 등의 책을 썼으며, 지난해에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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