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7:00 수정 : 2013.09.02 14:23

식인 풍습에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 적어도 문명 이후의 인간은 배를 채우 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종 교의 발생을 아버지의 죽임과 그 주검을 나누어 먹음으로 설명한다. 무리의 유 일한 한 남성만이 모든 여성을 거느리고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할 수 있던 시절, 그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아들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 주검을 나누어 먹었다. 아버지의 죽임은 유전자를 복제할 권한을 분산했으나 자 기 유전자의 근원을 말살한 아들들이 죄책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그러자 아 들들은 아버지를 숭배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아버지를 죽이고 그 주검을 나누 어 사건을 재연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잊지 않으려 했다. 예수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정신적 아들인 열두 제자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 주를 나누어준 것은 정확히 이런 의식의 상징적 재연이다.

종교적 의미의 식인이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는 짐승이거나 귀신밖 에 없다. 만약 그것이 사람과 비슷한 생김을 하고 있다면, 그건 말할 나위 없이 귀 신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란 우리에겐 낯선 상상이다. 여우 누이가 간을 빼먹고, 지네나 구렁이가 사람을 삼키거나, 호랑이가 아이들을 업어 간다는 이야 기는 들어봤지만 사람 잡아먹는 귀신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적 <세상 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같은 책으로 읽은 사람 잡아먹는 귀신 이야기는 어린 이의 마음에도 위화감 가득한, 내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참 나이를 먹어서 야 알게 되었지만, ‘마징가’가 일본제 로봇이고 ‘탱구’나 ‘갓파’가 일본 특산 괴물이 었듯, 이런 이야기들도 무분별하게 번역된 일본

에서 인류는 인간을 포식하는 다수의 거대생물인 ‘거인’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는다.
이야기책의 흔적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유독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나 귀신 이야기가 많다. 애니메이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거짓말을 좀 보태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사람 잡아먹는 귀신과 싸우는 귀신보다 센 사람 이야기다. 최근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사야마 하지메 원작) 또한 그렇다. 사람 잡아 먹는 거인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언제, 어떻게, 왜 생겼는지 모르지만 사람 들은 거인을 피하기 위해 하늘같이 높은 방벽을 치고 그 안에 살고 있다. 그렇게 한 100년 평화로웠다. 그러나 느닷없이 방벽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초대형 거인 이 나타나고, 공성무기처럼 성벽에 충돌해 구멍을 내는 갑옷 거인, 그리고 엄청 난 스피드로 인간 병사를 압도하는 여성형 거인 등이 나타난다. 이제 방벽은 안 전하지 않다.

일본에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 많은 까닭은 아마 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피비린내 나는 동족 살상을 거듭해온 그들의 역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나 긴 전국시대의 폭력 끝에 일본 농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들을 칼잡이 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사무라이’라는 직업이 생기고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영웅 이 탄생한 맥락이 그렇다. 이들은 인간의 탈을 쓴 귀신과 이에 맞서기 위해 귀신 이 되기로 결심한 인간의 산물이었다. 나가이 고의 명작이라 일컫는 <데빌맨>이 나 야기 노리히로의 <클레이모어>, 한동안 엄청난 인기를 끈 타카하시 루미코의 <이누야샤>, 하드코어의 거장이라는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작품 등이 모두 비슷 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괴물이 된 인간이 폭력의 연쇄를 끊을 열쇠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법은 우리에겐 익숙지 않다. <진격의 거인> 또한 적어도 이 점에서는 다른 일본 만화·애니메이션과 모티브가 비슷한 또 하나의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 엘런 예거는 거인에 맞서 거인이 된 소년이다. 실종된 아버지의 피험체(엘런의 아버지는 그가 거인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어떤 약품을 실험한 것 같다)이자 유일하게 맨몸으로 거인과 대적할 수 있는 그는, 자신의 살을 뜯어 피를 내고 스스로 거인이 되어 거인에 맞선다. <데빌맨>의 후도 아키라가 데몬족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최강의 데몬족 용사 아몬에 접신하듯, 엘런 역시 거인에 맞서기 위해 거인이 된다. 아키라가 끊임없이 아몬의 영혼과 투쟁하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듯 엘런 역시 그러한 싸움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를 지킬 수 없다. <클레이모어>의 반인반요들 또한 언젠가는 그 싸움에 지쳐 인간을 잃어버릴 운명이고, 따라서 인간으로서 죽기 위해 동료에게 처분을 요청한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는 엘런 같은 하이브리드가 더 있다. 이른바 ‘기행종’이라 불리는 거인들이다. 인간은 거인들을 그동안의 자료와 경험으로 습성과 행동이 예측 가능한 통상종과 그 범주에서 벗어나 기이한 특성을 보이는 기행종으로 구분한다. 아직 시리즈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기행종은 엘런 같은 하이브리드 가운데 인간성을 상실하고 완전히 거인이 된 존재인 것 같다. 거인의 몸 속에 잡힌 엘런의 모습은 마치 에바에 탑승한 이카리 신지 같은 모습이다. 에바의 파일럿은 단순히 기계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아니라 그것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씨앗 같은 존재다. 파일럿이 자기를 잃고 폭주하면 에바에게 잡아먹히고, 반대로 지나치게 자기를 지키면 에바의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한다. 같은 상황, 같은 이미지의 엘런은 어떤 면에서 <에반게리온>이나 <건담 더블오>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류의 상징일지 모른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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