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6:43 수정 : 2013.09.02 13:50

1. 장저와 걸닉

공자 일행이 부함을 떠나 채나라 신채(新蔡)로 가기 위해 회수를 건너는 나루터를 찾다 어 느 언덕에서 잠시 쉴 때였다. 문도들은 그곳에서 길을 아는 다른 여행자를 기다리는 동안 열국 을 주유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했다.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이 선택하 신 이 역정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강을 건너기는커녕 폭우를 피할 걱정부 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직접 길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할 듯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어디든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제자들이 강 쪽을 바라보며 의논하고 있을 때,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와 자로에게 말했다.

“유야, 수레에서 바라보니 언덕 저편에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더구나. 그들에게 나루터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았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자로가 언덕을 내려가면서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얼마쯤 걸어가니 나무 사이로 작은 개간지가 보이고 두 사람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그들은 노인이었는데,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모습이 마치 기다란 흙막대기 같았고, 한 사람은 물에 불은 짧은 통나무 같은 모습이었다.(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이하 ‘미자’편 6장) 이런 생김새 때 문에 우리는 훗날 그들을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2. 피인지사(辟人之士), 피세지사(辟世之士)

자로가 먼저 흙막대기같이 생긴 장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루터를 찾고 있는데 어딘지 아시오?”

자로의 질문이 다소 퉁명스럽게 들린 것일까? 밭을 갈던 장저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자로 를 힐끗 쳐다보고는 밭 가는 일을 계속했다.

“나루터가 어디인지 알고자 합니다.”

자로가 재차 묻자 장저는 대답 대신 언덕 위의 공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언덕 위에서 수레 고삐를 쥐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長沮曰 夫執輿者爲誰)

“누구긴요, 우리 선생님이십니다.”

“당신 선생을 내가 어찌 아누. 요즘 세상에 선생을 자처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 지.”

뜨악해진 자로가 말했다. “저분이 바로 공구이십니다.”(子路曰 爲孔丘)

“음, 저자가 바로 그 노나라 공구란 말이지?”(曰 是魯孔丘與)

“그렇습니다만.”(曰 是也)

“그렇다면 나한테 물을 필요가 없네. 그 사람이라면 이미 여기저기 뻔질나게 돌아다니지 않았나? 나루터쯤은 누구보다 자기가 잘 알고 있을걸세.”(曰 是知津矣)

노인은 그렇게 비아냥거리더니 다시 밭갈이를 계속했다.

자로가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걸닉에게 물었다.(問於桀溺)

걸닉이 대답 대신 반문한다. “그대는 뉘시오?”(桀溺曰 子爲誰)

“나는 중유라고 합니다.”(曰 爲仲由)

“노나라 공구인가 하는 사람의 무리로군.”(曰 是魯孔丘之徒與)

“그렇습니다만….”(對曰 然)

그러자 걸닉이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보시게, 공구의 문하생. 온 세상에 흙탕물이 흘러 넘쳐 가득한데, 누가 그걸 바꿀 수 있겠 소? 그러니 그대는 사람을 피해 다니며 사는 사람(辟人之士)을 따르지 말고, 우리처럼 세 상을 피해 사는 사람(辟世之士)을 따르는 게 현명한 처세가 아니겠소?”

그러고는 더 이상 자로를 아는 체하지 않고 써레질을 계속했다.(曰 滔滔者 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아차 싶었다.

‘채나라 망국지사(亡國之士)들이로군.’

자로도 같은 직감을 했는지, 더는 묻기를 포기한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훗날 신채로 돌아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장저와 걸닉은 한때 채나라의 저명한 대부들이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 신세던 채나라는 초나라에 한 차례 멸망당했는가 하면, 신흥 강국 오나라에 붙어 초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다 조정이 초나라파와 오나라파로 갈리는 바람에 임금이 시해됐다. 망국의 설움도 모자라 내홍의 환란까지 겪은 채나라의 뜻있는 지식 인들은 혼란한 세상을 피해 산림으로 은거했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구정물이 가득 흘러 넘치 는 오탁(汚濁)의 세계였다. 창 한 자루, 전차 한 대 없이 이 세상을 개혁하겠다며 열국을 주유한 공자의 편력은 그들에게는 지독한 위선이거나 공허한 환상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부에서는 공자가 조국 노나라를 떠나 열국을 주유하게 된 과정을 다룹니다.

글 이인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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