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6:25 수정 : 2013.09.02 13:49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였나 요? 전 지금입니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서 사쿠라기 하나미치(강백호)가 이렇게 말했을 때, 한국의 청춘들- 지 금에 와선 ‘포스트 386 주체’들이라 부를 수 있는 그들- 이 ‘울컥’한 것은 국가를 비롯한 그 어떤 권위나 역사적 의미에 기대지 않은 우연한 몰입과 투신의 순간이 존재할 수 있다 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386 주체’들에게(그들 역시 <슬램덩크>를 좋아했 지만) 이것은 꽤나 생경하고 이질적인 감수성이다. 이를테 면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이 ‘영광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극적 전경(前景)이 존재해야 한다. 불우 한 가정환경, 그늘진 성격과 콤플렉스, 처절한 지옥훈련, 악마적인 라이벌 등의 장애와 고통 없이는 승리의 쾌락도 있을 수 없다. 386 주체들이 그 어떤 세대나 주체도 필적할 수 없이 ‘진정성’을 독점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도 실은 이와 관련 있다.

386 주체에게 유독 도드라진 특성 중 하나는 우발성 이 섞여든 역사를 필연적·운명적 서사로 끝없이 대체하려 는 낭만주의적 경향성이다. ‘진정성의 레짐’이라 부르든 ‘저 항적 세대의식’이라 부르든 간에 이 경향성의 근거를 추적 하다 맞닥뜨리는 것은, 386 주체가 실제로 다른 세대에 비 해 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며 싸웠다는 사실, 또는 그 들의 진정성이 다른 어떤 세대보다 밀도가 높다는 증거 따 위가 아니다. ‘4·19 세대’나 ‘긴급조치 세대’와도 구별되는 386 주체들의 진정성의 마지막 심급에 놓여 있는 것은, 도 저한 윤리성이라기보다는 미학적 확신이자 주체화 전략으 로서의 영웅주의다. 이를 통해 주체는 구체적 개인들의 희 생을 역사적 필연으로 계열화하고, 자신들(엘리트-대학생) 의 기획과 ‘민중’의 협력을 통해 역사를 움직인다는 실감을 획득하게 된다. 진정성이란 결국 주체가 지닌 이 환상의 도 덕철학적 이름일 뿐이다.

386세대가 좀먹은 20대의 주체

1990년대가 소비와 문화주의의 홍수에 떠밀려간 ‘환멸 의 시대’로 규정된 반면, 2000년대는 촛불과 세대론의 시대 였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세대론의 범람은 2007년 <88만 원 세대> 출간 이후라고 해야겠지만, 포스트 386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2002년 월드컵 당시 광장의 주체들을 ‘W세 대’, ‘P세대’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걸 하나의 분기점으로 꼽 을 수 있다. 이런 세대론은 광고기획사의 마케팅 용어로 출 발한 경우가 많은데,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소비주 체를 호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 당시 <딴지일보> 김어준이 감격에 겨워 부르짖은 “우리 는 강팀이다!”는 선언은 뒤집어 말하면, 기성세대에게 선진 국·강대국 콤플렉스가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20대와 10대에겐 그 선언은 참으로 뜬금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라던 시기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나 대중문화로나, 심지어 개개인의 체형이나 체 구를 보더라도 이미 집단적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386 세대와 그 이전 세대에게 미국으로 상징되는 선진국에 대한 열등 감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주박’(주술에 걸려 꼼짝 못 하 게 된 상태)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강팀”이라고 재차 되뇌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2002년 처음 시작된 광화문 촛불시위는 <슬램덩크>와 <외인구단>의 차이보다 더 이질적인 세대들이 함께 모여 열어젖힌 정치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촛불의 스펙터클이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경험은 386 주체로 하여금 이른바 세대동맹의 정치적 효과를 각인시키게 된다. 세대론은 이제 문화적 차이보다 정치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담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2007년 8월,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공저)가 출간되면서 세대론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담론이 되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이 세대 모순의 형태로 불거지고 있으며 세대 간 연대와 청년들의 정치적 저항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일반명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선에서 정치적 세대동맹이 사실상 실패하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 그 책임을 청년 세대의 보수성에 돌리는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20대는 이른바 ‘20대 개새끼론’의 당사자로 기성세대에게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18대 총선 직후에는 ‘20대 투표율 19%’라는 인터넷 루머를 사실로 믿은 진보 지식인들이 20대를 비난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경향신문>, ‘20대 투표율 19%는 대의정치 위기’)도 있었다. 어느새 20대는 ‘보수’, ‘무개념’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20대가 희망이다”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불과 2년 사이 20대는 ‘개새끼’와 ‘영웅’을 넘나든 셈이다.

20대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또 과도하게 칭찬하던 이들의 절대다수가 바로 386 주체였다. 그들은 왜 그렇게 세대 담론에 몰두하고 집착했을까. 이들에게 세대론은 곧 새로운 주체론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획에서 20대는 당연히 진보적이어야 하지만 노무현보다 왼쪽이어선 안 되며, 20대의 ‘저항’은 수구보수 세력을 향해야지 진보 진영을 향해선 안 된다. 세대론의 과잉이 드러낸 것은 결국 386 주체의 권력 의지와 20대에 대한 정치적 책임 전가였다. 이들이 20대를 영웅-희생양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 20대의 사회적 처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성장 서사에서 생존·피해자 서사로

‘진보적 청년세대’에 대한 386 주체의 판타지에는 자신들의 성장 서사에 대한 일반화와 신화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 서사는 오늘의 청년세대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중세는 삶의 리듬이 거의 일정하게 반복되는 시대였다. 근대로 넘어온 이후 각 세대의 경험은 과거에 비해 훨씬 이질화되었다. 성장 서사도 변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개인’의 탄생으로 인해 성장서사는 점차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가까워졌다. 20세기의 성장담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원형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또한 그토록 엄청나게 양산된 것은 소위 20세기적 생산양식이 개인의 성장단계를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대적 의료·보육·교육 체계 속에서 생물학적 나이에 따른 발달단계가 제시되었고, 개인의 삶은 이에 맞춰 전형화되었다. 그것이 바로 근대 성장 서사의 물적 기반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박권일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사회과학학회 활동을 하면서 늘 욕구불만이었다. 결국 ‘문화이론학회’를 만들어 당시 폭발하기 시작한 ‘홍대신’을 돌며 마음껏 뛰어놀고, 시네마테크에서 ‘죽을 때리’고, 왠지 모를 죄책감에 김수행판 <자본론>을 읽다가, 뜬금없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욕하는 글을 쓰곤 했다. 우석훈과 <88만원 세대>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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