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7 11:02 수정 : 2013.08.07 18:03

대전MBC에서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펴냄/각 권 1만4800원
방청객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몇 번 우 려먹은 적 있지만, 나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이 우울했다”고 했다. 그 러자 사람들은 “실물을 보니 못생기지 않았다”고 격려해줬다. 강의가 끝난 뒤 내 사진 패널에 좌우명을 쓰라기에 ‘외모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좌우명을 설명하란다.

“대학 1학년 때 소개팅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 얼굴을 본 파트너가 깜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선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조금만 기 다려요. 금방 갈게요.’ 얼굴이 못생겼다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그 파트너 때 문에 이런 좌우명을 만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방청객들과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집에 갔다. 그로부터 며 칠 지난 후, 어느 블로그에서 그때 찍은 사진을 봤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더 니 이런 말이 써 있었다.

블로그 주인: 서민 교수 정말 못생겼더라. 우린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우리는 하 느님의 은총을 받은 거죠.

손님 댓글: 잘생긴 분이 망가져야 웃기지.

주인: 기생충과 꼭 닮은 것 같아.

 

미야베 미유키의 <진상>은 그 자체로 사람을 확 빨아들이는 멋진 스릴러 다. 하지만 이 책이 뛰어난 수작인 건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 숨쉬고 있어서였 는데, 내가 깊이 공감한 이는 마지마 신노스케다. 20대 초반 한창 나이에 출중한 무술 실력을 지닌 도신- 요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찰관- 인데, 이 친구의 결정 적 단점은 못생겼다는 것이다. 마지마의 외모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자.

 

젊은 남자에게 관심이 많을, 한창 나이의 두 아가씨가 마지마가 와 있는데 도 이쪽을 힐끔 쳐다보는 일도 없이 채소를 썰고 있다.(66쪽)

 

저자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의 외모를 품평한다.

 

세상에 보기 드문 추남… 얼굴 윤곽이 불퉁불퉁하다. 좌우 귀 높이가 다르 다… 코는 납작하고 입술은 두툼하다. 결정적인 부위는 이른바 옴팡눈이다. 푹 꺼진 눈구멍에 검은자위가 박힌 모습은… 둥지 속에 숨어 밖을 내다보는 벌레라 도 보는 듯하다.(67쪽)

다음 쪽에 가면 ‘천부의 재앙’이라고까지 하니, 못생긴 걸로는 한가락 하는 나 도 책을 읽으면서 ‘마지마라는 친구, 나보다 더 못생긴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못난 얼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듯이, 마지마 역시 자신이 못난 걸 안다. 가게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자 마지마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 얼굴이 못났다는 것은 잘 압니다.… 못난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주변 사 람을 두렵게 만드는 걸까요?”(234쪽)

마지마를 만난 이발사가 “존안을 뵈오니 기쁩니다”라고 했을 때 마지마가 한 말, “존안은 무슨, 추안이다.”(351쪽)

이발사는 “재미있으시다”며 치켜세우지만, 마지마의 마음을 난 알 것 같다. 숱한 상처에서 나온 씁쓸한 농담은, 적어도 본인에게는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마지마도 혼자일 땐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다. 못생긴 사람이 슬픈 건 좋아 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다. 나이가 든 후, 즉 여자들의 마음이 급해졌을 때라면 모를까, 젊은 여자들은 못생긴 남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난 진즉 미녀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고, 영화 <시라노>에서 못생긴 주인공 시라노는 자신 이 잘생긴 후배인 척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마지마는 어떤 방어기제도 만들지 못한 채 어여쁜 여인을 사랑하고 만다. 물론 그 여인이 마지 마를 좋아할 리 없다. 여인은 알고 보니 좋아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고, 당연한 얘 기지만 그 남자는 아주 잘생겼다.

사람의 품격은 실연당했을 때 드러난다.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차인 뒤 어떻 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방 안에 쪼그리고 앉아 울거나, 지인에게 전화해 서 “실연당했는데 술이나 사달라”고 하는 정도는 양해가 된다. 하지만 마지마는 그러는 대신 어여쁜 여인의 새어머니- 과부다- 에게 어떻게든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 새어머니 역시 미모가 출중하지만 한참 연상인데다 그 관심이 실연을 잊어 보려는 동기에서 나왔으니 문제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새어머니 역시 인근에 사는 의사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마지마는 장돌뱅이가 된다. 아무 일도 안 한 채 마을을 정처 없이 떠돌며 허송세월한다는 얘기다. 못생길수록 품격을 지켜야 하거늘, 마지마란 녀석은 왜 이리 못났는지 탄식이 나온다.

스포일러 하나. 그래도 끝에 가면 마지마를 좋아하는 여인이 하나쯤 나타나 지 않을까 했지만, 미야베 여사는 냉정했다. 그냥 마지마는 회개하고 원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런 설정이 마지마에게 불만일 수 있지만, 사실 여 자는 여자에게 집적거리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 다. 기생충 연구만 열심히 하다가 결혼에 성공한 날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 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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