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7 10:30 수정 : 2013.08.07 20:26

요사이 청년 문화의 자생적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청 년 노동과 삶의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그들 스스로 자본주 의 체제 내 생존과 자립 방식을 도모하고 있다. 이제까지 자 본주의 시장에 의탁해 살면서 망가지고 삶의 면역력이 떨 어진 몸의 체질을 개선하고 몸의 기억을 더듬는 일들이 여 기저기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문화자립, 문화귀촌, 일상예 술, 협동조합, 지식공동체, 제작문화, 소셜협업, 공유문화 등 사회적으로 참신한 키워드나 관심사를 통해 다양한 청 년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체로 그들의 운동 형식은 우 발적이고, 내용은 재기발랄하고, 기획과 실천들은 참신하 고 개혁적이다.

체제 대안적 힘이나 영향력으로 따지면 턱없이 부족할 수 있지만, 이 흐름은 신자유주의의 광폭한 질주에 작은 파 열을 일으킬 만한 아이디어와 실천의 실험으로 의미 있어 보인다. 일례로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길종상가’는 바로 우 울한 자본 현실에서 자생적으로 청년 프레카리아트들이 모 여 꾸린 창작 그룹이자 창업 공간에 해당한다. 즉 길종상가 는 여러 사람과 함께 동업하면서 경제 자립을 꾀하는 창작 그룹이자, 표준화·전문화된 상업적 생산을 비켜가는 새로 운 제작 문화의 가치를 퍼뜨리는 처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길종상가 박길종·김윤하·류혜욱이 속한 창작 그룹. 2010년 겨울 가상의 온 라인 종합상가를 시작으로 2011년 서울 이태원 오프라인 상가에 정착했다. 주문에서 디자인을 거쳐 제작, 운송까지 전 과정이 세 동업자들에 의해 이뤄 진다. 가구, 조명, 식물, 직물 등의 물건을 만들고 판매한다. 필요한 물건이나 인력, 그 밖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까지 적절한 비용으로 제공한다는 운 영 방침으로, 그들이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경험을 생산 가능한 형태로 전환 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온라인 상가 관리인의 소박한 꿈

길종상가는 원래 인터넷 공간에 세워진 건물 이름이 다. 그 시작은 2010년 12월 상가 관리인 박길종씨가 가상 공간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상가 건물에는 ‘한다 목공소’, ‘밝다 조명’, ‘판다 화랑’, ‘꿰다 직물점’, ‘있다 만물상‘, ‘간다 인력사무소’, ‘걷다 사진관’ 등이 입주해 있다.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다는, 종합상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어린 시절 유난히 세운상가, 낙원상가 등을 좋아한 길종씨, 그는 자 신의 이름을 달고 상가 짓는 행위는 어린 시절 줄곧 찾던 공 간의 가상적 실현과 같았을 것이다. 시장, 극장, 카바레, 놀 이터, 아파트 등이 공존하는 낙원상가의 근대적 모습에서 그는 ‘상가’의 매력을 회고한다. 달리 보면, 한때 난개발의 광풍 아래 세운상가 등 아케이드형 빌딩들이 이제 덧없이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한 그만의 노스텔 지어를 표현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 홀로 길종상가의 대표이자 관리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길종씨는 온라인 공간에 ‘박가공’이란 가 상의 아바타를 내세워 주문 출장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주문 가구 제작을 해왔지만, 상가 입주 종목에서 보는 것처럼 고객이 원하면 뭐든지 했다. 의뢰받은 가구 주문 제작은 물론이고 전등 수리, 하수관 교체, 세면대 수리, 페인팅, 이 성 파트너 대행 등 다양하다.

길종씨의 아바타, 박가공의 주 종목인 가구 주문 제작 은 고도의 기술과 좋은 원목을 갖고 수행하는 전문 가구 공방의 작업 방식과 거리가 멀다. 그는 좋은 재질의 원목 재 료뿐만 아니라 재활용품까지 뭐든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가구 제작에서 장인의 손길이나 정확도와 비례미가 느껴지는 전문가적 완성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오히려 그 는 고객이 원하는 쓰임새와 주변 상황적 배치 등을 고려해 그에 걸맞은 실용적 물건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길종씨는 서양화과를 나왔다. 그가 가구를 다루는 목 공 재주라고 해봐야 자작(DIY) 아카데미 제작소에서 1년여 간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깨우친 기술이 전부다. 정규 교육에서 익힌 예술 창작을 기본으로 삼고 알바 시절의 목공 경험을 밑천 삼아, 길종씨는 기존 공방 중심의 가구 제작 방식을 탈피한 자신만의 실용적 가구 제작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지나치게 멋을 부려 실용성이 떨어지거나 형식미 과잉의 제작과 생산을 멀리하고 고객에게 눈높이를 맞춘 가구를 제작하려 한다. 물론 길종씨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일관성은 있다. 그가 제작한 가구는 주로 입체감보다 평면감을 주거나 기하학적 미감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제작 방식은 마치 북유럽 다국적 가구 회사 이케아(IKEA)식 대량생산의 저렴한 생활형 가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가구는 이런 디자인과 거리가 있다. 최대한 빠르고 효과 좋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원칙만은 비슷하다. 길종씨는 재활용 재료를 무엇이든 활용하고, 가구 제작 과정에서 ‘나’의 창작 표현과 주문 고객의 필요가 서로 교호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에서 표준화된 자본주의 가구 제작 방식과 크게 다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뉴미디어와 인터넷 문화, SNS 문화 현상까지 IT 현상 전반에 주목해 글을 써왔고, 최근에 예술행동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저서로는 <사이버 문화정치> <디지털 패러독스> <사이방가르드: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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