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7 10:20 수정 : 2013.08.07 18:02

모심기 끝자락이던 지난 6월 22일 토요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에 네 단지(한 단지는 대략 950평(3140m²)이다)의 황금 밀밭이 여전히 수확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날에서야 수확하러 콤바인이 들판으로 입장하는 중이었다.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밀밭이 구례군에서 가장 늦게 밀을 베었을 것이다. 밀을 베면 곧바로 모심기에 들어간다. 이모작은 그렇다. 구례에서 이모작은 거의 밀과 쌀이다.

어찌되었건 주변 논이 모두 파릇한 모심기를 끝낸 신입생 자태로 통일한 가운데 유독 더부룩한 머리숱에 금색 염색을 한 듯한 밀밭은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관광객의 눈이라면 별 문제 없다. 오히려, “저것이 바로 밀입니다”라는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착한 교과서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같은 리그에 속한 사람들, 즉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밀밭은 오미동 농지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정중앙이다. 마을 사람이든 외부 방문객이든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 아래 땅이다. 길 아래 땅에서 농사는 원래 입을 많이 탄다.

“저거 어매 복장 뒤집어진다.”

“팽야 논을 돌아봐야 베든지 말든지 하제.”

“저거 인자 저라다가 밀씨 다 떨어지면 나락도 베려분당게.”

“건조기 들어갈 것도 없것다. 뽀짝 잘 마른다.”

관전자들이야 말 한마디 날리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정작 마음이 쓰이는 당사자는 농부가 아닌 농부의 어머니다. 다른 논의 모는 한 자가 자랐는데 모심기는커녕 밀도 베지 않았으니, 엄니는 하루 일곱 번 정도 셋째 아들을 찾았지만 결국 클라스 콤바인이 도착한 것은 6월 22일이었다. 일반적인 콤바인은 날을 세웠을 때 그 높이 이하의 곡식은 당연히 밟고 지나간다. 그러니까 무릎부터 치고 나간다고 이해하면 된다. 클라스 콤바인이라는 놈은 김밥말이 방식으로 땅바닥부터 돌돌 말아서 밑단을 자른다. 클라스 콤바인으로 수확한다는 것은 밀의 키가 짧다는 뜻이다. 일반적 관점으로 보면 ‘농사 조진’ 경우다. 이 콤바인은 구례에 두 대뿐이다. 따라서 미리 약속을 잡아야 수확 일자도 잡을 수 있다. 5월 주말에 예식장 잡기 같은 것이다. 5월 중순의 비바람에 쓰러진 밀이 많아서 금년에는 클라스 콤바인이 많이 바빴다. 엄니의 셋째 아들은 10여 일을 “클라스 콤바인이 바빠서 수확이 늦다”는 대답만 했다. 장마 전에 밀을 베지 않으면 이래저래 심각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밀 베고 모심기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엄니는 셋째 아들을 ‘체포하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우리 정수 못 봤소?”

그런 아들 류정수와 마주 앉았다. 같은 마을에 살아 인터뷰라는 형식이 어색했기에 형사가 취조하듯 질문을 이어갔다.

“이름.”

“아, 몰라.”

“아, 이름도 몰라? 진짜 시작부터….”

“류정수요.”

“나이.”

“천구백육십오년요.”

“태어난 곳.”

“아, 그냥 알아서 쓰랑게.”

“아, 정말!”

“운조루요.”

“형제는.”

“아들 셋, 딸 둘.”

“언제까지 구례에서 살았나?”

“고등학교꺼정요.”

“토지초?”

“예, 토지초. 그 담으로 동중학교.”

“고등학교는 순천? 광주?”

“아뇨, 농고.”

“구례농고?”

“예.”

“공부 안 했구만.”

“했는디….”

“대학은?”

“○○대학교.”

“전공은.”

“법학과요.”

“법! 법학? 류정수가 법학을 전공했다고? 무법천지 류정수가 법학을 전공했다고! 대한민국 법 다 죽었네. 아니, 기억을 잘 더듬어 봐, 진짜 법학인지.”

“참말로 와 그래 쌓노. 내가 그리 안 보이요?”

“응.”

2009년부터 지리산닷컴에서는 류정수 농부의 밀가루를 판매했다. 그해 가을 밀 파종을 하는 류정수에게 ‘제초제 하지 말고 밀농사 지어서 밀가루로 가공해 팔아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밀은 겨울 작물이다. 따라서 벌레 약을 할 이유는 없다. 화학비료 하지 않고 봄에 올라오는 풀만 약을 하지 않는다면 아주 쉽게 무화학농이 가능한 작물이다. 옆에서 보기에도 밀농사가 제일 편해 보인다. 뿌리고 거둔다. 비료와 제초제를 하지 않기로 했으니 농부가 밀밭으로 내려설 일은 실질적으로 없다. 그렇다고 정말 자기 밭으로 내려서지 않는 농부도 처음 봤지만.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권산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전공해 웹디자인과 인쇄물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부업으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 7년 전 전남 구례군으로 이사했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디자인 일을 한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아버지의 집> <맨땅에 펀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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