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7 09:51 수정 : 2013.08.07 18:01

차인표는 규범적으로 민감하다. 그가 뻣뻣하고 범생스러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행복이 개인의 성취가 아닌 사회적 성취라는 깨달음을 준다.SBS 제공
연예병사제도가 전격 폐지된다. 가수 비의 복무 규정 위반과 연예병사 선발 특혜, 방송인 붐과 비의 지나친 외박과 휴가, 가수 상추와 세븐의 안마시술소 출 입 등의 문제가 불거져 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대국민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마 련된 연예병사제도가 16년 만에 ‘80년대 육개장’(6개월 석사장교)마냥 공중으로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 더불어 연예인이 공인 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고 적잖이 다툰 일이라 낯설지 않지만, 뾰족한 대답이 없어 여전히 답답한 문제다. ‘일반인’이라 는 말이 ‘연예인’의 반대말이 돼버린 지금, 한편 그들의 문화적 권력 혹은 권력화 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현실 상황이 돼버린 건지 모른다. 권력이 영향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전통적 정치의 개념이 문화적 차원의 문제와 상당히 뒤섞이고 있다면, 이 상황은 더욱 정도를 더해갈 터이다.

이 글은 어쩌면 지난호 다룬 이효리에 대한 글의 다른 버전일지 모른다. 차 인표를 통해 보이는 것, 그와 더불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이효리의 그 것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차인표는 이제 곧 없어질 ‘연예병사’였다. 하지 만 그에게 연예병사란 일반 사병 모두가 부여받는 조금 특별한 보직과 다름 없다. 차인표는 하루 3시간 수면으로 버텨가며 구본승·이휘재와 함께 <신 고합니다>(KBS1·1995) 제공한 감우성·구본승·이휘재와 함께 <남자만들 기>(KBS1·1996)에 출연했다. 더구나 그는 연예병사제도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 적인 계기를 제공한 이였다. 미국 시민권자로 병역의무가 없음에도 군에 입대함 으로써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뒤를 이어 많은 연예인이 군입 대를 자원했다. 군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렇 게 해서 연예병사제도가 만들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며 살기도 어 렵다.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는 까닭은 대개 해야 할 일 때문이고, 해야 할 일이 어려운 까닭은 무릇 하고 싶은 일 때문이다. 흔히 그렇게 생각한다. 둘은 조금 어 려운 표현으로 ‘길항하는 관계’(서로 대립해 한쪽이 기울어야 다른 쪽을 도모할 수 있는 관계)에 있을 터이다. 하나, 사람 사는 세상이 날로 의미와 가치에서 멀 어질수록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막스 베버가 언급한 철장에 갇힌 관료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위르겐 하버 마스가 주장한 정당화의 위기라든지 하는 이론이 모두 그런 이야기이다. 도덕이 니 윤리니 하는 이야기는 필요와 효용의 그늘에 가려 인간 삶의 주변으로 밀려 난 채 박제가 되어 단지 감상될 뿐이다.

해야 할 일이란 필연으로 구속되지 않는다. 필연적이라면 판단 따위는 필요 치 않다. 규범이나 당위는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른 선택 행위이다. 하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한다. 이를 ‘규범의 힘’(Normative For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정도로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그걸 ‘규범적 민감성’ (Normative Sensitivity)이라 부른다. 사람에 따라 규범의 힘에 더욱 강하게 끌 리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의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규범적 민감성이 강한 사람을 흔히 ‘범생’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아 치’라고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 차인표는 범생 범주에 속하는 규범적으 로 민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규범적으로 민감한 것이 반드시 좋다는 건 아니다. 규범적 민감성이 강할수록 몸과 마음의 자유가 구속되기 쉽고, 따라서 유연하게 생각 하고 행동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어 삶의 어떤 부분이 딱 딱하고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 신애라의 증언대

로 차인표는 여행도 외식도 나가 놀기도 싫어하는, 전형적 인 군필자와는 다른 이미지의 사람이다.

그의 연기 또한 딱딱하고 뻣뻣하기는 마찬가지다. 드 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MBC·1994)에서 바이크를 타 고 손가락을 흔들던 모습에서 받은 충격적인 비주얼은 그 의 다른 작품에서는 더 이상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대 그 리고 나>(MBC·1997~98), <왕초>(MBC·1999), 그리고 <불꽃>(SBS·2000) 같은 작품들이 아련하지만 적어도 내 게는 그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시절을 겪는 동안 그의 영화들은 대개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난해 <선 녀가 필요해>(KBS2)의 타이틀롤을 맡게 되었을 때, 혹시 나 하는 기대를 걸었지만 그의 뻣뻣하고 딱딱한 몸은 시트 콤으로도 풀리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바로 이 지점이 그와 이효리를 구분지을 수 있는 ‘차이’가 될지 모른다. 아무튼 그는 자유로운 영혼, 날 내 나는 ‘연예인’은 아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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