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3:37 수정 : 2013.08.07 18:01

1. 손톱깎이 성찰

취사장 이야기가 계속된다. 점잖게 생긴 중년 남자가 리어카에 걸터앉아 발톱을 깎고 있 다. 손을 놀릴 때마다 발톱 조각이 시멘트 바닥과 하수구 구멍에 아무렇게나 떨어진다. 발톱은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데, 그는 더 이상 제 몸이 아닌 발톱의 운명에 괘념치 않는 것 같다.

발톱을 다 깎은 남자는 주변을 둘러본다. 이번에는 잽싸게 콧속으로 (공용) 손톱깎이의 머리부분을 집어넣는다. 금테 안경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똑한 코가 손놀림에 맞춰 벌름거린 다.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깨달음이 머리를 관통하는 순간이다. 내게도 비죽이 자라서 난감 한 코털이 몇 개 있다. 유용한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데 흉하거나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한 박자 늦게 왔다. 그런 인상은 즉각적 반응이 아니라 성찰적(Reflexive) 사고에 속했다. 그러니까 감 옥 밖에 있던 자신을 상기하고 견주는 과정을 거쳐야 그 장면을 ‘더럽다’고 느낄 수 있다.

2. 감각의 전이

손톱깎이 사용에도 요령과 노력이 필요했다. 손톱깎이는 날카로운 쇠붙이라서 내키는 대 로 사용할 수 없다. 교도관이 상주하는 장소에 보관돼 있으며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물건이다. 또 손톱깎이를 얻기 위해 교도관과 접촉할 수 있는 재소자는 부조장급 이상으로 한정돼 있다. 부탁하려면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런데 내가 속해 있는 반찬조의 부조장은 내 존재 자체를 곧잘 무시했다. 손톱깎이를 쓰려면 여러 날의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다.

다 큰 어른이 손발톱 하나 관리하지 못했다. 그동안 익힌 사회적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 다. 반면 의식한 적 없는 생리현상까지 문제가 됐다. 영락없는 어린아이가 됐다. 밥 먹고, 똥 누고, 잠자는 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취사장 방은 취침시간과 무관하게 이부자리를 깔았다. 휴일 없는 작업장에 대한 소측의 배려였다. 그러나 이부자리를 편 방과 그렇지 않은 방은 일 상에 큰 차이가 있다. 평범한 상태에서 공유되던 공간과 가능하던 동선이 사라지면서 사적 영 역만 남는 것이다. 각별히 조심해도 다른 사람의 영역을 건드리게 돼서 죄송하단 말을 달고 살았다.

교도소는 형벌을 집행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제한은 자유·권리 같은 추 상적 개념뿐 아니라 몸의 미시적 수준에도 가해진다. 취사장의 다른 재소자들에게 감옥의 많 은 부분은 의식되지 않는 배경으로 존재했다. 그 배경 위에서 그들은 각자 징역을 살았다. 하 지만 풋내기인 나는 모든 상황을 의식해야 했으며 사소한 일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여기 서 살려면 감옥 밖 세계에 기반을 둔 감각이 바뀌어야 했다.

이런 미숙함은 내 수감 절차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보통 수형자는 먼저 구치소에 수 감된다. 신입끼리 구치소에서 부대끼면서 감옥에 익숙해지고 형이 확정된 다음 교도소로 넘어 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앞가림하는 법도 배운다. 담당판사가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 에 나는 바로 교도소로 오게 됐다. ‘직입소’라 부르는 드문 경우였다.

3. 과시와 위축

취사장의 많은 재소자는 내 서툰 몸짓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 태도는 도움은커녕 긴 장감을 주고 고립감을 가중시켰다. 범죄자의 일원이면서도 범죄자들의 소굴에 잘못 발을 들였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여기에는 정교하게 연출된 무관심이 있었다. 빈번한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나를 ‘간 보고’ 있었다.

감옥에서 수감자들의 서열을 정하는 공식 규칙은 없다. 군대와 달리 시간에 따라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조건은 평등한 분위기를 낳지 못한다. 역으로 매사에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된다. ‘간을 본다’는 이 경쟁에서 얼마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인지 가늠 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권력을 행사하되 물리적 폭력으로 번질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기술이다. 그러니까 충분히 이용하되 궁지로 몰아도 안 된다. 약자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순간 선을 긋지 않으면 공사가 구별되지 않는 감옥의 특성상 밑도 끝도 없이 당한다.

감옥에서 인간관계의 기본 성격은 ‘과시’와 ‘위축’이라는 패턴을 오가며 정의된다. 의식하 든 않든 신입이 오면 모두 간을 본다. 재소자들 간의 권력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위축되고 과시 하는지를 관찰하거나 시험하는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철두철미하게 위축에 충실한 사 람이었다. 일관성이라는 미덕이 있었다. 1상 9방에서 있던 일이다. 화장실에서 씻는데, 나를 두 고 하는 말이 들렸다. “저 새끼는 욕하면 꼼짝도 못해. 주눅 들어서 일을 더 못해.” 그들끼리의 은밀한 대화였지만, 화장실 문은 앙상한 나무틀에 투명비닐 한 장으로 돼 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4개월간 옥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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