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1:15 수정 : 2013.07.05 19:26

사람은 관계의 산물이다. 극단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란 그것만으로는 텅 비어 있는 아무것도 아닌, 다만 관계들의 좌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있고, 한편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무얼 생각하는지 대략 감잡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리고 그들의 집합적 삶을 이야기하는 한에서 관계는 곧 개체의 식별 코드이고, 어떤 면에서 ‘사회 속’ 개체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장한다. 요정 혹은 엘프 캐릭터의 네 소녀가 만든 가수 ‘핑클’의 리더에서 5집 <모노크롬>을 발표한 ‘중견’ 솔로 여가수에 이르기까지, 이효리가 그려온 궤적은 이런 면에서 개체의 사회적 삶과 관계를 통한 성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효리의 5집 앨범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그녀의 삶이 점점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비투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997년 ‘SES’에서 시작한 걸그룹 혹은 미소녀그룹의 등장은 당시 충격이었다. ‘소녀대’ 같은 일본의 아이돌 여성그룹이 언젠가는 한국에도 등장하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더구나 한국의 걸그룹은 일본의 아이돌 그룹과는 달랐다. 이효리가 리더로 참여한 핑클은 1998년 데뷔했다. 핑클은 1999년 두 번째 앨범으로 연말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걸그룹이 가요시상에서 대상을 받은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2002년 4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핑클은 더 이상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효리는 2003년 솔로 앨범 를 발표했고, 수록곡 ‘10 minutes’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녀의 솔로 데뷔는 더할 수 없이 성공적이었다. 좁은 음역과 음악적 역량의 미숙함이 지적되었지만, 대중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이후 발표된 앨범에서 음악적 자질이나 표절 문제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여자 솔로 가수로서 입지는 더욱 굳혔다. 연예인으로서 입지는 가수로서 입지보다 오히려 단단했다. 특히 신동엽과 함께한 예능 프로그램 <해피 투게더>(KBS2), 유재석과 더불어 이른바 ‘국민남매’의 신화를 만든 <패밀리가 떴다>(SBS)는 그녀를 TV 예능 프로그램의 절대자로 자리매김했다.

연예인으로서 최고의 성공을 구가했지만, 가수 혹은 뮤지션으로선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2집과 4집에서 불거진 표절 문제는 그녀의 성장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였다. 결국 솔로 4집 발표 이후 그녀는 한동안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 어쩌면 최근 발표한 5집 이전의 3년은 가수 혹은 연예인으로서 그녀에게 암흑 시기였을지 모른다. 그녀는 3년 동안 한푼도 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채식주의자, 반려동물운동가로서 보여준 모습, 그리고 정치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 등으로 지난 3년간을 기록한다. 자신의 신념과 그에 따른 작은 행동이 우리 삶 전체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체적 실천과 연결짓자는 그녀의 생각은, 선거 때마다 투표를 독려하고 그 의미를 나누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이런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여러 양상으로 반응했고, 또 연예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소셜테이너’니 ‘폴리테이너’니 하는 말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가수 혹은 대중예술가가,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식을 갖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구체적인 생각에 동감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 발언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표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발언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도 똑같이 의미 있다. 다만, 그들의 생각은 매체를 통해 퍼지고 전달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큰 소리로 들릴 뿐이다. 물론 큰 소리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 소리는 작은 소리보다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영향력 면에서 그 소리는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좀더 높은 수준의 사려와 판단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그녀의 발언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 논쟁의 존재는 곧 그 말의 힘을 증명하는 흔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의 발언이 결국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음을 이야기해준다는 점이다. 이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녀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메시지를 갖는다는 것은 노래를 통해 나누고 싶은 생각과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노래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그녀의 시도와 노력을 드러내는 한 가지 방향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노래는 변화했고, 발전했다. 핑클 시절의 여리고 수줍은 감수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체적 독립성을 자기 욕망에 대한 자신감으로 표현한 ‘10 minutes’의 적극성이 사회적 수준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그녀의 앨범 <모노크롬>은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 결국 ‘미스코리아’라고, 그들 하나하나가 우리를 대표하는 아름답고 떳떳한 삶의 주인이라고 선언한다(‘미스코리아’, 작사·곡 이효리). ‘힘 있는 사람은 귀를 막았고, 힘없는 사람은 귀가 막’히는 게 요즘 세상인데, 이를 돌파할 방법은 ‘희망’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이 아닐 뿐 시작될(이미 시작된)’ 우리의 일상적 삶 속의 실천이고 우리의 마음이라 말한다(‘Holly Jolly Bus’, 작사 이효리).

이효리의 5집 앨범이 음악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성취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만한 능력이나 식견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하고 싶은 말이 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의 삶이 점점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알 수 있다. 이효리는 관계 속에 있고 또 멀리 있지만, 우리 관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런 생각,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효리’라는 캐릭터는 삶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잃어버린 냉소적 삶에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다르지 않은 곳’에 ‘너와 나와 우리’가 산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삶이 있고 그것을 꿈꾼다. ‘소용없다 해도 해볼’ 일이고, ‘거기 없다 해도 가볼’ 일이다(‘Better Together’, 작사 이효리).

박근서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 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 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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