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3:56 수정 : 2013.06.12 10:47

(슈퍼)갑과 을의 부당계약 관계쯤으로 전락한 ‘사회정 의’의 부재로 인해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사실상 한국 사회 에서 주종적 착취 관계는 이미 국가와 재벌에 의해 계속된 고질적 사안이 아니었던가. 갑을 관계의 비유적 표현은 그 사태가 좀더 극단과 사회 모순의 정점에 이른 탓이리라. 노 동자들을 분신과 자살로 모는 재벌 경영주와 개발업자들, 영업점 주인에게 폭언과 협박을 일삼는 본사 직원들, 불공 정 계약을 통해 가맹점을 착취하는 프랜차이저들, 노예 계 약을 통해 성상납을 강요하는 연예기획사들, 국민을 상대 로 툭하면 소송을 거는 정부 등 상식을 초월하며 공정의 룰 조차 사라진 오늘이다.

한국 사회에서 불거지는 오늘의 비상식들은, 남북한 모순, 친일파와 군부세력 청산의 역사적 미완, 극우 정서의 지배적 논리, 정치적 퇴행, 문화의 스펙터클화, 빈부 격차 증가와 비정규직 양산, 정부 주도의 막개발과 환경파괴 등 삶의 피폐한 조건에 의해 더 모순적인 상황을 낳고 있다. 이 처럼 여러 모순점이 중층적으로 겹치면서 사회가 제 기능 을 못하고 도착적이거나 비정상적 논리에 의해 주도되면서, 우리는 ‘자가당착’의 현실에 짓눌려 있다.

김선 인문학을 공부하다 흘러 흘러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페이퍼컷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서 정치색이 난무하는 아방한 영화와 아이돌이 출연하는 공포영화를 거쳐, 지금은 ‘제한 상영가 3관왕’으로서 뭔가 ‘제한’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아, 아이돌을 다시 만나고 싶긴 하다. 더불어 비자발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발적이 되어버린 ‘제한 상영가 철폐 운동’의 배후 세력이기도 하다.
아랫도리 없는 포돌이… 신랄한 정치 풍자

영화감독 김선은 대한민국의 조악한 권력 현실을 재기 발랄하게, 그러나 헛웃음만을 유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 여주는 정공법을 택했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 여>(2010)에는 그의 이러한 고민이 배어 있다. 사회적 관용 의 수준이 문제인가, 예술 창작을 통한 정치적 표현에 대해 권력집단이 과문한 탓일까. <자가당착>은 영상물등급위원 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 상영가’ 결정을 받는다. 제한 적 상영을 수용할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이같은 영등위 결 정은 개봉하지 말라는 소리나 한가지였다.

김선의 <자가당착>은 일종의 현실 개입 실험영화로 보 는 것이 정확하다. 거친 실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엔딩에 는 페이크(가짜) 다큐멘터리적 요소도 들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 경찰의 귀염둥이 마스코트 ‘포돌이’ 인형 이 등장한다. 핵심은 포돌이의 성장영화란 점이다. 만화가 이현세가 만든 이 해맑은 경찰의 이미지, 포돌이 마스코트 는 텔레토비같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형상이다. 물론 겉은 어린애 형상이지만 실체는 시민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면 서 때론 불필요한 폭력을 남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포돌이 는 그의 어머니(박근혜)의 명령을 받아 진공청소기로 쥐들 을 쓸어담기도 하고, 소음에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물대포 를 발사해 진압하기도 한다.

한 피리 부는 여인과의 우연한 조우로 인해 포돌이가 아랫도리를 얻어 어른이 되어가려 하지만 그도 수월치 않 다. 중간중간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아들의 남근을 거세하 기 위해 계속적으로 그의 뺨을 후려치며 남자되기를 억압 하거나 쥐들이 떼로 덤벼 그의 다리를 갉아먹는다. 이 와중 에 아랫도리 없는 철없는 포돌이는, 자기를 낳은 아버지(이 명박)를 찾고 그 실체를 확인하려 한다. 영화의 파국은, 포 돌이의 엄마가 정부(허경영)와 바람난 것을 알고, 극도로 화가 난 포돌이가 이 둘의 목을 날리는 장면이다. 콜라주된 이들의 얼굴 마네킹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목에서 피가 솟구친다. 존속살해를 하게 된 포돌이는 엔딩에서 결국 다 리를 얻어 남자가 된다. 이제 그는 천진한 포돌이 얼굴에서 흉측한 어른 쥐의 형상으로 변태한다. 어른이 된 포돌이는, 그의 아버지를 찾아 청계천을 배회하고 4대강 사업현장을 찾아나서다 처량하게 공권력에 질질 끌려나온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뉴미디어와 인터넷 문화, SNS 문화 현상까지 IT 현상 전반에 주목해 글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 그 변경을 예술행동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저서로는 <사이버 문화정치> <디지털 패러독스> <사이방가르드: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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