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0:27 수정 : 2013.06.12 10:48

전화가 왔다. 오래간만에 듣는 목소리로,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한 제자들 이다. 친구 둘이 살림을 합쳐 작은 셋방을 얻었단다. 지긋지긋한 고시원 생활을 청산한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 방바닥에 맥주와 치킨을 벌여놓고 파티하는 중이 란다. 보고 싶다, 그립다, 힘들다 그런다. 운다. 기쁨의 표현인지 괴로움과 서글픔 의 표현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온갖 상념이 뒤엉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격 앙된다. 침착하게 격려의 말을 전한 뒤 전화를 끊었지만, 제자들과의 통화는 오 랫동안 흔적을 남긴 상처가 되었다.

미스 김은 불완전 노동의 구조를 꿰뚫는 지혜와 의식이 충분치 않고, 대안과 전망을 이미지화하는 통찰도 부족해 아쉬움을 남긴다. KBS 제공
지역 사립대에 몸담은 탓에 졸업하고 서울에 일을 찾으러 올라간 청년들을 많이 알고 있다. 서울의 삶은 녹록지 않다.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서울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어느덧 자신의 일상이 되어버린 바라지 않던 미래였다. 물 론 서울을 꿈꾸고 그곳의 가능성을 믿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 들에게 그 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향은 그들의 미래를 살뜰히 챙겨줄 형편이 아니다. 그들의 상경은 구조화된 밀어냄, 강제된 필연이다. 인클로저 운 동은 영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으로 도시로 밀려난 농민들의 역사 는 또 다른 모양으로 지속된다.

KBS2 TV 드라마 <직장의 신>은 2007년 방송된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 격>(NTV)이 원작이다. 케이블TV 드라마 방송 SBS플러스를 통해 <만능사원 오오마에>라는 타이틀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버블경제 이후 평생직장의 환상 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파견노동’의 문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직장의 신> 역시 마찬가지다. 만능 파견노동자 오오마에 하루코(시노하라 료코)를 대신 하는 미스 김(김혜수), 그녀의 강력한 자기장에 이끌려 새로운 삶에 눈을 뜨는 모리 미유키(카토 아이)의 역으로 정주리(정유미), 사토나카 켄스케(고이즈미 코 타로)와 쇼지 타케시(오오이즈미 요)는 무정한(이희준)과 장규직(오지호)이 연기 하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똑같은 작품이다.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당연히 ‘빨간 내복’(6회, 홈쇼핑 내복 완판 에피소드)의 신화를 이룩한 미스 김과, 그녀의 만화적 캐릭터가 땅을 딛게 해주는 또 다른 그 녀 정주리이다. 그들과 맞서거나 함께하는 장규직과 무정한 또한 의미 있는 캐릭 터지만, 미스김과 정주리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맡은 중심 인물이다. 미스 김은 과거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아픔이 있다. 은행 창구 직원이던 그녀는 고참을 화 재로 잃은 후 비열하고 냉정한 직장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슈퍼 우먼이 된다. 그녀의 종아리에는 그때 상처가 남아 있다(11회, 된장 학교 에피소 드). 그녀는 그 상처를 드러내거나 상처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정주 리는 명문대 지방 캠퍼스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이다. 흔히 말하는 스펙이 변변 치 않은 탓으로 파견 회사를 통해 3개월 임시직으로 직장을 잡았다. ‘88만원’ 세 대 혹은 ‘청년실업’의 아이콘인 그녀는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활고에 찌들려 하 루하루를 위태롭게 연명한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 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 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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