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3:42 수정 : 2013.05.07 10:52

쇄말주의(트리비얼리즘·Trivialism)는 ‘평범·통속· 진부함’을 뜻하는 라틴어 트리비얼리스(Trivialis)에서 온 말이다. 보통 어떤 대상을 두고 ‘쇄말주의적’이라고 하는 건 지나치게 세세하고 시시콜콜한 설명이나 묘사를 가리킬 때 이다. 그러나 ‘쇄말화’는 단순히 추상 수준이 낮아지고 구상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즉 ‘정밀화’ 내지 ‘구체화’와 는 다른 무엇인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질’을 말할 때 보통 사용되는 개념이 ‘해상도’(Resolution)이다. 1인치당 픽셀의 개수를 가리키는 데, 해상도가 높을수록 영상이나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인 간의 시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해상도를 무한히 높여 간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선명함을 구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질은 해상도 라는 양적 투입을 늘려갈 때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쇄말주 의자 역시 해상도를 높이듯 설명 대상의 온갖 잡다한 사실 (Facts)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보여주는 일에 집착한다. 그 러나 그 일은 대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기보다 노이즈를 높이는 결과로 귀결되기 쉽다. 대상의 핵심적 특 징이 뭔지 더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상의 속성을 계열화하지 않고 그저 나열하기 때문이다.

계열화되지 않은 지식의 범람

지식의 쇄말주의란, 결국 계열화되지 않은 지식의 범 람을 가리킨다. 그것은 단순히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이 아직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체계적인 지식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까지 포함한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면, 이는 위키피디아 또는 구글의 ‘정보 검색 혁명’을 가리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위키피디아나 구글은 아날로그 시대의 지적 권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권위를 지식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테면 ‘전세계에 산재한 사이트와 인터넷을 이 용하는 사람들이 특정 지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얼마나 많 이 열람하는가?’ 즉 소수 전문가의 논의에서 대중의 실시간 적 개입으로 지식 생산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이다. ‘웹 민 주주의’라고 부르든 ‘대중지성의 시대’라고 부르든 간에 이 런 변화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지식의 쇄말주의는 이런 지식 패러다임 변화에 동반하는 현상이다. 확실한 건 21세 기 들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박권일 대학에서 사회과학학회 활동을 하면서 늘 욕구불만이었다. 결국 ‘문화이론학회’를 만들어 당시 폭발하기 시작한 ‘홍대신’을 돌며 마음껏 뛰어놀고, 시네마테크에서 ‘죽을 때리’고, 왠지 모를 죄책감에 김수행판 <자본론>을 읽다가, 뜬금없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욕하는 글을 쓰곤 했다. 우석훈과 <88만원 세대>를 함께 썼다. 계간 <자음과 모음R>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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