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5 23:04 수정 : 2013.03.05 23:07

영화 베를린
독일의 베를린은 의미가 있는 도시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다. 분단의 이상적 결말을 상징하는 매혹적 기호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꿈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날처럼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치우고 동포가 하나 되는 건 ‘우리의 소원’이다. 동서가 아니라 남북이라도, 제국주의 전범국이 아니라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이룩한 식민지라도 통일이라는 행복한 결말은 당연한 바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과 바람을 형상화한 영화와 드라마는 요즘 드물다. 그리고 그 드문 작품들이 그려내는 이미지는 예전과 상당히 다르다. 북한 사람을 헐벗고 얼굴 파인 걸인들이나, 빨간 완장을 차고 채찍을 휘두르는 짐승으로 묘사하던 시대에는 그 이미지가 선명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북한판 같은 <지금 평양에선>(KBS1 TV·1983년 1월 4일~12월 21일)이라는 드라마나 혹부리 괴물 돼지를 무찌르는 <똘이 장군>(감독 김청기·1978)이 그랬다. 하지만 동서 냉전이 종식된 뒤로는 많은 것이 변했다. 선명한 이미지는 이제 부담스럽다. 보수 여당의 상징색이 ‘빨강’이 된 시대에 ‘빨갱이’라는 말은 더 이상 공포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은 남한에서 만든 북한 첩보원 영화다. 북한 첩보원이 등장하는 영화는 여럿 있다. 한석규가 북한 공작원으로 출연하는 <이중간첩>(감독 김현정·2003)은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북한 공작원이 주인공인 영화다. 또한 <베를린>은 북한의 권력 구조가 내부적으로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살벌한 곳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수령과 지도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북한 내부의 보수 강경파들에게 갈등과 위기의 책임을 돌린다. <쉬리>(감독 강제규·1999) 또한 같은 설정에서 출발했다. 대략 21세기 이후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간첩영화’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베를린>의 북한 공작원 표종성(하정우 분)은 잔인한 살인기계지만 인간적으로 순수하고 정의롭다.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 세상을 옳게 보지 못할 뿐이지 됨됨이는 나름 훌륭한 인간이다. 권력 싸움에 바쳐진 불쌍한 제물일 뿐이다. 당과 인민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만, 대가는 끔직한 배신과 처참한 희생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비극의 주인공이다. 결정적 무지가 그의 운명이며 업이다. 표종성은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가 언급한 냉소적 주체가 될 수 없다. 진심을 가진 뜨거운 인간은 차가운 냉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말보다 몸이 먼저고,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들에게는 냉소가 어울리지 않는다. <쉬리>(감독 강제규·1999)의 박무영(최민식 분)이 그랬던 것처럼 표종성은 권력을 모른다. 자기를 움직이는 커다란 힘에 대해 그는 무지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 련정희(전지현 분)와 산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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