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3:08 수정 : 2013.02.26 21:37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군자는 진실로 궁한 자이다.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 -‘위령공’편 1장

  

 1. 7일을 굶주림에 시달리다

 ‘꾸르륵’.

 옆에 누운 배불뚝이 짐꾼 채인(蔡人)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밥차 오는 소리인가?”

 ‘쪼로록’.

 이번엔 내 배 소리다.

 “사돈 남말하네.”

 둘이서 서로 쳐다보며 힘없이 웃는데, 발을 드리운 천막 안에선 거문고 소리가 낭랑하다.

 배불뚝이가 명아주 풀을 씹으며 심드렁하게 내뱉는다.

 “네 선생님은 이 와중에도 금(琴)을 타고 싶을까?”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새나온다. 완구(宛丘· 진나라 도읍)를 출발할 때 고용된 짐꾼들은 공자에 대한 존경심이 높지 않았다. 급기야 “공자는 위선자가 아닐까.” 의심하는 말까지 나왔다.

 “혹시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아닐까? 생풀을 씹고 있는 아랫것들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 것 같아.”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 속의 공자(저우룬파 분).

 2. 전란에 휩싸인 대륙

 나는 중국 땅에 떨어지기 전, 열국을 주유하던 공자 일행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의 들판에서 식량이 떨어져 7일 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며 고난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른바 이 진채지액(陳蔡之厄)의 고사가 바로 나, 이생(李生)이 직접 겪은 일일 줄이야….

 이 무렵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크고 작은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공자가 주로 머물던 진나라와 채나라는 강대국인 초(楚)나라와 오(吳)나라의 쟁투에 휘말려 망국에 가까운 고초를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북방의 강자인 진(晋)나라로 유세(遊說)를 가려다 포기하고 방향을 바꿔 남방의 강자 초나라로 가려 했다. 초나라 소왕(昭王)은 공자도 높이 평가한 바 있는 현군인데, 그가 공자의 명성을 듣고 자기 나라에 초빙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돌던 차였다. 그래서 거리상으로도 가까운 초나라 동맹국인 진나라에 머물며 사성정자(司城貞子·성의 관문 방비를 담당한 진나라 대부. 공자를 존경해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를 통해 초나라 쪽과 방문 교섭을 벌이던 중 오왕 부차(夫差)가 진나라를 침공한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숙적 구천(勾踐·월나라왕)을 굴복시킨 부차는 초나라까지 제압해 명실상부한 패자(覇者)가 되고자 진나라를 먼저 친 것이다.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인 초나라에게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기에 초소왕도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병하기에 이른다.

 두 라이벌 간의 대회전이 진나라 땅에서 벌어질 것이 확실해지자 사성정자는 공자 일행에게 피난을 권유했다.

 “일단 채나라 부함(負函)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심제량(초나라의 대부. 초나라 식민지인 채나라 부함의 총독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섭공이 이 사람이다)이라면 선생님을 잘 보살펴 줄 겁니다. 소왕과의 면담이 성사되면 그때 초나라가 안전하게 모셔갈 겁니다.”

 이때가 기원전 489년, 노애공 6년으로, 공자 63살 때의 일이다.

 

 3. 공자, 계략에 빠지다

 공자가 초나라로 갈 것이란 소문이 완구의 대부들에게 알려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나라와 채나라의 대부들은 공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 공자를 대접하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공자를 경원하고 있었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귀족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한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공자가 초소왕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나라와 채나라는 초와 오 양쪽 모두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신세다. 따라서 두 나라의 권문세족들 상당수가 초와 오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공자가 영명한 초소왕과 친해지는 것이 결코 달가울 리 없었다.

 “공구, 그 늙은이가 초나라왕에게 그동안 우리가 공작을 벌인 일들을 고해 바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은 자기 목을 쓰다듬으며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그래서 두 나라 대부들은 서로 연통을 넣어 어떻게든 공자가 소왕을 만나지 못하도록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병을 동원해 공구 일행의 호위병을 흩어버리고 식량을 빼앗겠소.”

 “우리는 어떤 마을에서도 공구가 유숙하지 못하도록 조처하겠소.”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알 리 없는 공자 일행이 초나라로 향하던 중 한 강가에서 야영를 하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쳐 일행을 포위했다. (<사기> ‘공자세가’)

 “식량을 죄다 내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자공이 이들을 달래어 식량을 내주며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우린 채나라 사람들인데 진나라 전투에 끌려갔다가 도망치는 중이다. 너희들도 남쪽으로 가지 말고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는데, 그때 나는 그 자가 누더기 안에 갑옷을 받쳐 입은 것을 얼핏 보았다. 나중에 확신하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패주병을 위장한 진나라 대부의 가병임이 틀림없다.

 아무튼 식량을 잃은 공자 일행은 그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맹수와 습지의 해충을 피해 이동하며 며칠째 들판을 헤매었지만,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간혹 마주친 어떤 군영이나 마을도 일행을 받아주지 않았다. 어느 마을에선가 한 선비가 귀띔을 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비로소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윗선에서 읍재에게 낯선 대부 일행을 보면 절대 마을에 들여놓지 말라고 했답니다.”

 

 4. 군자는 원래 궁한 자이다

 훗날 유가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이 진채지간(陳蔡之間)의 고난에서 공자를 수행한 제자는 자로, 자공, 재여(宰予·생몰 미상), 안연이다. 자로가 54살, 자공이 32살이고, 재여는 30대 초·중반, 안연은 20대의 파릇파릇한 청년이었다. 이 밖에 다른 제자들도 몇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자주 일행을 벗어나 왕래하였기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 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짐꾼으로는 위나라에서부터 따라온 나를 비롯해 진나라에서 고용된 수레꾼을 합쳐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들판을 헤맨 지 이레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은 채나라 접경 마을 부근의 한 언덕에 도착했다. 그때 재여는 지치고 굶주린 상태에서 독초를 잘못 먹고 한구석에 뻗어 있었고, 안연은 나물을 다듬고, 자공과 자로는 불을 지피고 있었다. 숨겨둔 묵은 보리마저 바닥나 곡식 한 톨 없이 명아주 풀로만 국을 끓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짐꾼들은 그 사정을 알고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수군대고 있는데, 공자가 거처하는 천막 안에서 또 거문고 소리가 난 것이다. 공자가 나즈막히 시를 읊는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아니, 선생님은 우리 고통을 정녕 모르시는 건가? 모른 척하시는 건가?”

 자로가 온 사방이 들으라는 듯 소리치며 불쏘시개를 냅다 집어던졌다.

 자공은 그런 자로를 제지하지 않은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대저 선하고 의로운 자는 복이 있고, 악하고 불의한 자는 죄를 받는다고 했다. 어쩌서 평생 인(仁)과 의(義)만을 쫓아온 우리가 이렇게 짐승처럼 굶주린단 말인가? 정녕 하늘은 착한 자의 편인가?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다!” (<순자>‘유좌’편)

  자로의 성난 불평에 우리 일행은 아연 긴장했다. 자로가 이처럼 대놓고 공자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짐꾼들도 서로 눈치 보며 몸을 도사렸다.

 잠시 후 공자가 거문고 연주를 마치고 제자들을 불렀다.

 “얘들아, 이리 들어오너라.”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가슴마저 떨려왔다. 저러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혹여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는 것은 아닐까?

 “유(由·자로)야, 사(賜·자공)야, 회(回·안연)야,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자로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분한 나머지 불평을 쏟아내긴 했지만, 정작 스승의 얼굴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잔뜩 굳은 얼굴로 퉁명스레 되물었다.

 “선생님, 군자도 이처럼 궁할 때가 있습니까?”(子路온(성낼 온)見曰 君子亦有窮乎)

 공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거문고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다.”(子曰 君子固窮)

 옆에서 듣던 자공의 얼굴에 일순 실망의 빛이 스쳐갔다. 사람이 굶어죽는 판에 방책은 강구하지 않고 군자연만 하실 건가?

 안연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뭔가를 끄적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자로는 공자의 말에 억지로 누르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듯했다.

 “선생님, 이 판국에 웬 궁짜 타령이십니까?”

 발끈하려는데 공자가 자로를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진다.”(小人窮斯濫矣·이상‘위령공’편 1장)

 자로가 순간 얼굴을 숙여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춘 채 자공과 안연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뭐라고 하신 거니? 그러니까 나더러 소인이란 말인가?”

 자로는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공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환난에 처해서도 덕을 잃지 않는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은 서리와 눈이 내린 뒤라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臨難而不失而德 大寒旣至 霜雪旣降 吾是以知松柏之茂也·<여씨춘추> 제14권⑦)

  그러고는 비파를 끌어당겨 안더니 현을 뜯기 시작하셨다.

 

 5. 자로, 춤을 추다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 있던 이 아슬아슬한 ‘언쟁’에 대해 훗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실제로 제자들의 항의 강도가 훨씬 셌는데, 유가들이 공자 위주로 사실을 축소 왜곡한 게 아니냐는 게 의혹의 요지였다. 자로가 공자의 따끔한 일갈에 승복하지 못한 채 “비파 소리에 맞서 방패를 잡고 춤을 추었다.”(子路抗然執干而舞·<여씨춘추> 제14권)는 이야기도 후세에 전해졌는데, 이 역시 유가들이 공자를 높이기 위해 꾸며낸 소설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자로가 왜 방패를 잡고 춤을 췄는지 직접 보지 못해 말하기 뭣하지만, 자로가 춤을 춘 것만큼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날 그 언덕에서 내가 본 바는 이러했다. 나와 짐꾼 몇 명은 천막 앞에서 숨막히는 일촉즉발의 사제 대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한바탕 난리가 날 듯한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쥐죽은 듯하던 천막 안에서 비파 소리가 나더니, 성난 얼굴로 천막 안에 들어간 자로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자로 같은 단순한 사람이 노련한 공구의 상대가 못되지. 원래 군자가 궁짜인 걸 여태 몰랐단 말인감? 안다고 하면 궁짜요, 모른다고 하면 소인이니, 그동안 따라다닌 세월이 아깝도다, 흐흐.”

 짐꾼들 사이에서 이런 실소가 흘러나오는데, 자로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여가 널브러져 있는 나무 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말씀은 높아도 너~무 높아….”

 자로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이, 모르겠다. 나라도 가서 직접 식량을 구해봐야겠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자공이 뛰어와 자로의 행방을 묻고는 자기도 식량을 구해오겠다며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안연과 함께 막 나물을 뜯으러 나서던 참이라 고갯길을 향해 가는 자로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몇십 보쯤 뒤에서 비탈에 미끌어지며 쫓아가는 자공의 모습도 보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고개 중턱을 넘어가던 자로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우리 쪽 언덕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돌아서서 가기를 두어 번 하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히 자기 무릎을 치고, 또 자기 머리를 몇 번 치는 듯하더니 이윽고 오른팔, 왼발, 왼팔, 오른발 짓을 번갈아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가는 것이다.

 “안연님! 저기 보세요. 자로님이 춤을 춥니다!”

 천막에서 나온 뒤 내내 말이 없던 안연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 중유형(자로)이 춤을 춘다고?”

 춤추는 자로를 발견한 안연의 얼굴에 금세 기쁨의 꽃이 피어났다.

 “그럼, 그렇지!”

 안연은 나물이 담긴 바구니를 내던지고 공자가 계신 천막 쪽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전 집을 떠난 형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하러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막내아들과 같았다.

 “선생님! 중유가 춤을 춥니다!”

 “…”

 천막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선생님, 자로형이 춤을 춘다니까요!”

 “…”

 안연이 기다리다 못해 발을 걷었다.

 잠시 후 조용하던 천막 안에서 거문고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리듬을 타던 금 소리는 어느덧 가슴을 풀어헤친 듯 격정적인 선율을 내뿜고 있었다.

  

 6. 이심전심

 공자 일행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다시 초나라로 향해 갈 때 자로가 선발대가 되어 일행과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자로를 수행하면서 그날 일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다. 

 “왜 춤을 추셨습니까?”

 자로는 내 어깨를 감싸안고 걸으면서 몰래 비밀을 털어놓는 소년처럼 속삭였다.

 “이건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그게 말이야, 이상했어. 나는 분명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머릿속에선 자꾸 한 줄기 번개가 번쩍거리는 거야. 선생님의 그 눈빛! 목소리는 엄중하게 꾸짖고 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어! 그건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우리 둘만의 눈빛이었어.”

  “자로야, 너까지 왜 이러니? 너마저 이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니? 저 어린 제자와 수행자들은 또 어디에 손발을 두어야 하겠니?

  자로야, 우리는 군자이다. 너와 나는 젊어서 만나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서로를 격려하며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군자가 어려움을 과장하면 소인이 된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잖니?

  선비가 현실과 타협하고 어려움 앞에 무릎 꿇을 때는 핑곗거리를 찾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덕을 잃고 절개마저 꺾여 역사의 오명을 뒤집어쓴 이가 또한 얼마이더냐?”

 언젠가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지. “‘이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아 내가 뗏목을 띄워 바다 저편으로 가려 할 때, 나를 따라나설 자 자로뿐이로다’(道不行 乘부(木+孚)浮于海 從我者 其由與·‘공야장’편 6장)라고.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나는 선생님의 그 눈빛에서 선생님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 선생님이 가장 믿고 의지해온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확신했다네. 그 생각을 하니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그만 저절로 팔다리가 움직이질 않겠나?”

 

 7. 공자의 눈물

 자로가 춤을 춘다는 안연의 외침 소리에 나머지 일행도 모두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다. 공자의 거문고 소리가 들판 가득 퍼져가는 가운데 자로가 춤을 추며 고갯마루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자공이 그 뒤를 손을 흔들며 따르고 있었다. 거문고 소리가 거기까지 들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때 내 눈에는 마치 자로가 거문고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안연과 나는 나물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채 두 사람의 모습이 고개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한참 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훗날 안연이 사형 자로에게 귀띔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때 거문고를 켜던 공자의 눈가에도 촉촉히 물기가 어렸다고 한다.

 붉은 노을이 대륙의 지평선을 찬란하게 물들이는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孔子彈琴子路舞顔淵頌子貢覺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군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하다. 소인은 어려움에 빠지면 과장한다.

 공자가 말씀을 마치고 금을 연주하다.

 자로는 춤을 추고 안연은 노래하며 자공은 깨달았다.

이인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