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2:59 수정 : 2013.02.05 03:01

기획 ‘덕후와 잉여’는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주체 또는 주체화 양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새삼 기획 의도를 환기시키는 이유는, 기획의 목표가 ‘덕후’나 ‘잉여’라고 불리는 특수한 개인들의 흥미로운 개인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그런 개인사는 우리 논의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필요충분한 요소는 아니다. 요컨대 이 기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그 결과물은 ‘덕후와 잉여의 신기한 박물지’가 아니라 ‘덕후와 잉여를 통해 본 주체의 해석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추상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덕후, 즉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를 사회변동과 연관시켜 사고할 때 일본의 문화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를 피해갈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는 1980~90년대 일본 비평계를 주도해온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가 주도하는 <비평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2000년대 들어 이들과 결별하고 독립적으로 저술을 발표하고 있다. <솔제니친 시론>으로 비평계에 데뷔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본래 문학비평가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현상이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에 게임이나 ‘라이트노벨’(Light와 Novel을 조합한 일본어식 영어, 일본 서브컬처 소설을 말함) 등 이른바 ‘서브컬처’라 부르는 영역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사다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대표작 중 하나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001)이 번역·출간된 2007년이다. 당시 그는 <존재론적 우편적: 자크 데리다에 관하여>(1998)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후속편 격인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2006)으로 이미 일본에서 비평가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굳힌 뒤였다.

오타쿠 분석은 포스트모던(Post Modern·탈근대 또는 후기근대)에 대한 분석이다. 포스트모던이란 말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워낙 많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어떤 연구자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이며, 또 어떤 연구자에겐 이미 ‘낡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는 이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비평가다. 어쨌든 아즈마와 관련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1970년대 이후의 문화적 상황을 부르는 것이라 대략적으로 이해하면 족하다.”(아즈마 히로키·<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6~27쪽) 1970년대 이후의 문화적 상황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치가 실추하고 문학이 실추한’ 세계다. 또한 그 세계는 현실의 ‘커다란 이야기’(Metanarrative)가 더 이상 과거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세계다. 커다란 이야기는 ‘거대담론’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의할 때 필수로 언급되는 프랑스의 이론가 장프랑소와 리요타르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모던적인 것’(the Modern)과 ‘포스트모던적인 것’(the Postmodern)을 구분하는데, 모던적인 것은 곧 ‘진리=정의’의 보증자로서 커다란 이야기에 의존하는 태도이다. 반면 포스트모던적인 것은 커다란 이야기, 하나의 보편성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태도에 대한 불신이자 거부의 전략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권일 계간 <자음과 모음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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