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2:38 수정 : 2013.02.05 02:43

시간이 흐를수록 막장으로 가는 기미는 보이지만, 그래도 그 시작은 예사롭지 않았다.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지만, 기존 드라마의 도식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SBS TV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우리 시대의 욕망에 대한 하나의 담론이다. 물론 이전의 수많은 드라마들이 당대의 욕망을 기술했다. 의도 했든 안 했든 많은 드라마가 그러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존 피스크는 드라마가 나름의 논리와 규범대로 세상의 진실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생각에 ‘드라마적 리얼리즘’이란 이름을 붙였다. 드라마는 우리 삶의 일부다. 당연히 그것이 차지하는 삶의 조각들만큼은 리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청담동 앨리스>는 우리 삶에 대해좀더 적극적이고 과격하게 진술한다.

많은 사람들이 <청담동 앨리스>를 보며 <발리에서 생긴 일>(SBS TV·2004)을 떠올릴지 모른다. 전혀 다른 분위기에 기본 구조도 다르지만 문근영-박시후와 하지원-조인성의 관계는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다. 이수정(하지원 분)과 한세경(문근영 분)은 비슷한 욕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완전히 다른점이 있다. 하나는 히로인의 엇갈린 선택이다. 발리의 이수정은 매혹과 욕망을 거슬러 현실을 선택하지만, 한세경은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의 악과 깡으로 욕망의 부르심을 선택한다. 이 여자 주인공들의 선택보다 더 극명하게 다른 것은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다. 발리의 정재민(조인성분)이 거역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명령에 짓눌려(그는 착하고 무기력한 아들이었다) 어둡고 무거운 최후를 향해 달려갔다면, 청담동의 차승조(박시후 분)는 아버지라는 대타자를 거슬러(멜로에 연적이 없다. 차승조의 라이벌은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다) 한없이 가벼워지려 한다.

<청담동 앨리스>에서 차승조 혹은 장 띠에르 샤는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인격적 상징이다. 물론 전형적이지는 않다. 아마 이 드라마가 생각하는 전형적 청담동 스타일은 신인화(김유리 분)·신민혁(김승수 분) 남매와 어머니 정여사(윤소정 분) 가족일 것이다. 서윤주(소이현 분)가 성취한 청담동 며느리는 윤택하지만 과잉된 규범과 형식으로 짓눌린 가식과 위선의 자리다. 그들의 삶과 생리는 청담동 밖과 전혀 다른 ‘아비투스’(Habitus·구체적 경험들이 쌓여서 형성된 삶의 형식)에서 생성되어 우리의 상식이 아닌 그들만의 ‘독사’(Doxa·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 특정한 집단의 당위적 신념)를 갖는다. 하지만 차승조는 다르다. 그는 ‘그럼직한’ 상징이 아니라, ‘그랬으면’ 하는 원망의 기호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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