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1:56 수정 : 2013.02.24 20:11

음습하고 요망한 왜색문화라더니

‘사람이 아니무니다’로 새삼 유명해진 그 누나, ‘엉덩이가 작고 예쁘다’는 그 누나의 이름을 안 건 1990년대 어느 날이었다. 일본 대중문화가 언제 개방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엔 가슴을 ‘갑빠’라고 부르는 언어적 용례가 이미 보편이었다. 그리고 ‘X재팬’(일본 록밴드) 정도는 알아야 ‘간지’(멋)를 논할 수 있었으며, ‘이나중 탁구부’(일본 만화)만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상상력이었다. 역시 그 무렵이었다. 정작 우리 중 누구도 일본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우리가 뭘 좀 하기만 하면 어른들은 ‘일본에서 수입된 요망한 세태’라고 비난했다. ‘일진회’(학교폭력)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어떤 아이들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때도. 우리는 전체적으로 ‘저질문화에 오염된 아이들’이었고, 총체적으로 ‘왜색문화에 찌든 병리적 세대’라는 진단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그랬다.

내가 처음 만난 갸루상은 X재팬의 요시키와 히데였다. 갸루상의 계보에 요시키와 히데가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갸루’가 ‘걸’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걸 감안하면, 내 기억은 전혀 계통이 없고 부정확한 개인사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 역시 하등 중요치 않다. ‘사람이 아니무니다’로 소비되는 2012년의 갸루상이 역시 걸이 아닌 것처럼. 2012년 한국의 개그맨은 극단적 희화로 그/녀를 재구성하고 있지만, 요시키와 히데를 시작점으로 삼는 그 시절 갸루상의 이미지는 전혀 아니었다. 혹독하리만큼 이상한, 뭔가 배척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던,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좋아해야 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던 그런 시절에 내가 처음 만난 일본이었다. 일본 문화의 고유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척해야만 했던 우리가, 어떤 개별성 안에서 구축해낸 독특한 자아 그 자체였다.

김완 미디어스 기자

한국방송 의 박성호, 그는 ‘멘붕스쿨’에서 갸루 분장을 하고 나와 “사람이 아니무니다”라는 말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한겨레 자료

‘웃기지도 않는 불통사회’가 너무 웃겨

‘레드얼럿’(Red Alert)이라는 게임이 있다. 낡아 빠진 냉전 이데올로기를 상기시키는 불온한 게임이지만, 나름 족보 있는 가문 출신이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타이틀에는 ‘유리코 오메가’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패권 다툼이라는 시대착오적 설정을 모티브로 한 게임이지만, 전장을 누비며 적군을 쓸어버리는 욱일제국 최고의 영웅은 세일러복을 입은 갈래머리 소녀 유리코 오메가다. 일본 최고의 ‘인간 병기’는 쇼군이나 사무라이가 아니다. 닌자나 야쿠자도 아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Kill Bill)에서 일본은 ‘칼’과 ‘닌자’ 혹은 ‘야쿠자’의 나라로 그려진다. 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키도(블랙 맘바)’는 일본 명인에게서 칼을 얻는다.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야쿠자들은 모두 그 칼끝에서 추풍 낙엽처럼 흩어져버린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쟁 억제력의 8할을 차지하는 ‘중2’와 마찬가지로, 일본 야쿠자 최대의 병기는 교복 입은 여학생 ‘고고 유바리’였다. 타란티노가 가장 정성을 쏟아 묘사한 캐릭터이자,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모은 등장인물이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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