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8 18:23 수정 : 2013.01.10 21:08

<나들> 둘러보기-구독신청

2007년 서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이 학교 총학생회 선거 합동유세가 열리고 있다. 청중 가운데 각 후보 진영과 관련 있는 학생 이외에 일반 학생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구국의 강철 대오.”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 대오.”

 내 것이 아닌 패기 넘치는 단어들을 본다. 구국이라니, 강철이라니, 민족의 운명이라니, 개척이라니, 애국이라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오라니!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말은 “내가 고자라니”뿐인, 이 시대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말춤’이 세계를 뒤흔드는 이 시절에, 홀로 백마라도 탄 듯 고색창연해 보이는 저 힘세고 강한 말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렇다. 바로 전설의 ‘전대협’과 ‘한총련’이다. 입으로 발음하고만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의협심이 솟을 것 같은 두 단어는 사실 줄임말이다. 줄임말도 이렇게 패기 넘친다면 풀네임은 어떨까? 전대협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한총련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어라?

 갑자기 맥이 풀린다. 그러니까 고작 길 가다가 발밑에 걸리는 돌부리 같은 게 있어서 보면 거기에 나뒹굴고 있다는 그 대학생 말인가? 투표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는데, 능력도 없어서 취업도 못 하고, 빚쟁이에,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에, 연애도 결혼도 못 하고 한평생 취업 준비만 하다가 ‘88만원 세대’가 된다는 바로 그 대학생들의 협의회와 연합 따위가 구국을 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한다고?

 청년들이 이르게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기가 종종 있었다. 가령 한국의 4·19혁명은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이 주축이 된 혁명이었다. 식민통치와 전쟁을 겪으며 의견과 목숨을 맞바꾸는 것을 지켜본 움츠린 어른들 대신, 신식 고등교육과 근대화의 세례를 먼저 받을 수 있었던 새파랗고 겁 없는 젊은이들이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물불 안 가리는 패기는 독립운동가, 지독한 반공주의자, 왕족의 후손, 독재자, 수많은 쟁쟁한 정적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던 노회한 정치가 이승만을 결국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만다.

 

 민주화 시대를 장악한 자본권력 

 1980년대는 또 어떤가? ‘80년 5월 광주’의 아이들을 자처한 젊은이들이 민중을 위해 목숨을 걸기로 결의했다. 그중 일부는 정말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광주의 희생자들에 더해 동지들의 주검을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무거운 어깨만큼이나 젊디젊은 나이에 그들은 ‘이론가’가 되고, ‘조직가’가 되었으며, ‘혁명가’가 되었다. 그러고선 마침내 1987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군부독재가 종언을 고하며 그들은 ‘승리’했다. 이제 그들의 앞에는 궤도에 오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거나 평화롭지 않았다. 또 냉전이라는 국제질서, 세계경제, 미국의 의중 같은 많은 변수가 음양으로 적용된 결과였다. 그러나 어쨌거나 20세기의 한국은 식민지와 내전의 폐허에서 시작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무이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이 경이로운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은 학생·민족·민주·빈민·민중·시민 등의 이름을 내걸고 있던 수많은 ‘운동’들이었다. ‘독립-내전-분단-산업화-민주화’는 이제 건국 이후 한국 사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공식적 흐름으로 안착되었고, 아직 현실정치세력으로 잔존해 있는 독재·반공세력들조차 공식적인 장에서만큼은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부정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 두 번의 ‘민주’ 정부, ‘민주화 유공자’라는 국가적 기념과 보상 체계의 성립, 군벌세력의 정치적 숙청과 다시는 방해받지 않았던 직접선거. 누군가에게는 주어진 것이자 익숙한 것인 이런 풍경이 실은 투쟁의 산물이었으며, 이 투쟁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분노한 청년들이 어깨를 나란히 걸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쟁취한 자유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군부독재는 평범한 사람들도 괴로웠지만, 재벌로 대표되는 자본에도 괴로운 것이었다. 재벌들은 독재세력과의 밀월관계를 통해 수많은 특혜를 받으며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 축적이 어느 수준에 이르자 독재정부의 간섭은 이들에게 족쇄가 되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것이 1천 원으로 표현되든 100엔으로 표현되든 상관없이 1달러와 바꿀 수만 있다면 모두가 평등한 세계이고,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자산 삼아 성장한 한국의 자본 역시 그 평등의 세계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많이 축적하느냐는 하나의 기준만 존재하는 그 세계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어쨌거나 국가 이름으로 축적의 방식과 내용 그리고 양을 규제하려는 독재정권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주화는 그들에게도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로운 세계를 주었다.

 새로운 시대의 자유를 두고 2개의 버전이 격돌했다. 자유롭게 살아갈 자유와 소유하고 축적할 자유. 결과는 후자의 압승이었다. 자본은 사적 소유를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제1의 질서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고, 자유에의 열망은 소유에의 욕망에 의해 점차 잠식돼갔다. 직접적으로 찍어 누르고 칼을 들이대는 권력에 비해, 소유는 ‘나도 언젠가는’이란 환상을 심어주며 그것에 취한 사람들을 손쉽게 요리했다. 몇 번의 위기와 몰락 속에서 조금이나마 정신 차렸을 때에야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어느 것도 내 것은 없었고, 지배는 불법 구속이 아니라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군의 사람들이 “물러가라!”고 외쳤지만, “누가?”라는 반문에는 좀처럼 답하지 못했다. 이 복잡한 현대사회가 도둑처럼 와 있었다.

 ‘아싸’, ‘중2병’, ‘관심병자’…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101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어떤 이들이 분노에 차 외쳐대는 것처럼 20대가 운동을 안 하거나 투표를 안 해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20대는 한국 사회를 망쳐놓을 만큼의 힘도 없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대학과 사회에 당도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원형을 알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뒤였다. 엄혹한 군사정권은 사라졌지만, 이들에게는 학자금 대출과 취업난이라는 전혀 새로운 엄혹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대학생에게 ‘지식인’이라거나 ‘미래의 사회지도층’이라는 낯 뜨거운 수사를 붙이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노교수나 영어 잡지 판매원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바빠 죽겠는데 때마다 꼬박꼬박 불러 세워서 민주화니 독재니 혼자서 떠들어대다가 갑자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며 욕을 퍼부어대는 이상한 아저씨들과, ‘누구 덕에 이렇게 사는지 아느냐’며 자리 양보 안 한다고 성질을 부리는 노인들 틈에서 어리둥절해하는 것 말고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주일에 4일을 등교하니 ‘주사파’요, 틈만 나면 축구를 하니 ‘운동권’일 따름인 ‘그런 거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권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거리가 아니라 도서관에 있었다는 이유로 싸우는 학우들에게 부채감을 느끼던 대학생들은, 공부해야 하는데 도서관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운동권들을 막기 위해 학교에 민원을 넣는 교육 소비자로 바뀌었다. 오늘 대학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학우’에게 운동권이란 틈만 나면 뭔가를 가르치거나 ‘선동’하려 들고,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이득(가령 ‘운동권 스펙’ 같은!)에 봉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의뭉스러운 존재들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정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그들은 낙오자가 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외환’이 있으면 ‘내우’도 있다. 대학 내 범운동권 모임들은 냉정하게 말해 ‘학내 부적응자’ 모임이 된 지 오래다. ‘아웃사이더’(일명 ‘아싸’로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 ‘중2병’(‘나는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중학교 2학년 즈음의 정신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 말), 불만분자, 조울증자, 관심병자(관심받기 위해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일부러 반복하는 이들), 항상 쓸모없는 장광설로 다른 이들을 지치게 하는 이들, 어두워 보이는 낯빛의 ‘패션 테러리스트들’이 오늘날 운동권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다. 만약 대체 왜 여기 와서 그러는 건지 이유를 모르는 ‘운동권 야심가’가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다면 ‘헬게이트’(지옥문)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체로 제3자가 들으면 어이없는 사건을 계기로 묵은 앙심들을 폭발시키며 권모와 술수까지 동원한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다가, 가슴에 상처 하나씩을 적립하고 한쪽이 탈퇴하거나 공중분해되는 것이 이제는 운동권 조직의 일반적인 와해 수순처럼 자리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긋지긋한 노선투쟁과 종종 벌어지던 비민주적 행태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그 장렬한 존재감을 2012년 터진 ‘통진당 사태’에서 보았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세력이 어렵사리 쌓아온 입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린 것은, 굳이 따지자면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굳건한 당위와 연결된 습속의 힘은 너무 강한 것이어서, 그것이 당장의 부정의나 부당함을 다소 동반하더라도 궁극의 정의에 복무할 수 있다면 용납될 수 있다는 진영론적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데 이 ‘당위’에 대한 의심과 성찰을 동반하지 않고 ‘어떻게?’의 반복을 통해 유지되기 시작한 조직은, 점차 ‘조직을 위한 조직’이라는 자가당착적 논리를 통해 굴러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당위 자체가 전면적인 위상 변화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 더해지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파멸적인 구르기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함부로 젊은이들을 탓하지 말자. 우리에겐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수많은 존재가 있다. 사교육계의 이론가, 룸살롱의 실천가, 노동 착취의 혁명가 등. 21세기 한국의 희망 아, 486! 이들이 민주화의 이름표를 내걸고 자신들의 과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본다면 오늘날의 용감한 부적응자들을 욕할 수 없으리라. 좀 찌질하고 때론 믿을 수 없을 만큼 짜증나도, 시대와 함께 아파하는 것은 저들이라기보다는 쭈뼛거리며 어정쩡하게 서서 있는 대로 불평을 늘어놓는 부적응자들의 엉성한 대오다.

 

 희망은 조금도 없을까 

 이제 우리는 찬란한 운동권의 과거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 현재에 도달했다. 청년들이 외치던 당찬 구호들은 낡고 고루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내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 눈곱만큼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기각된다. 이제 시스템은 그것이 말석일지라도 풋내기들에게 섣불리 자리를 내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청년들은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에 전념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촘촘한 효율성 속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다.

 유순한 투항자들에게도 이렇게 야박할진대, 오늘날의 운동권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말해서 뭐할까? 이들은 이전에 뭐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폐허 위에서 믿고 따를 선배도, 이성과 가슴에 불을 지펴줄 선생님도 없이 덩그러니 서 있다. 사회 부적응자들의 산발적 결단을 제외하면 새로운 피를 수혈할 기반도 없고, 세대 교체는 지금으로선 꿈도 못 꿀 일이다. 아마 이들이 운동권이 된 후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망했다’ 혹은 ‘망할 것이다’라는 진실에 한없이 가까운 직감이리라.

 그럼 희망은 조금도 없을까? 세계는 언제나 반대자들을 위해 아주 작은 자리라도 마련해둔다는 원론적 이야기와, 신참자들은 적어도 자신이 잉여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으리라는 현실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면, 너무 쉽게 절망도 희망도 하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부터가 모든 것의 시작알 것이다.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세상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갖고, 무언가를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른 아무것도 아닌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적어도 ‘고민거리’만큼은 걱정하지 마시라,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니까.

최태섭 문화평론가

관련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