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08:45 수정 : 2014.07.03 11:10

말하기가 본업인 청와대 대변인에게 입을 굳게 다무는 게 오히려 적절한 직무 수행이라는 주문이 쏟아지는 와중에, 가난한 자를 섬기라고 한 예수 말씀을 좇는다는 이들은 센서가 망가진 말하는 인형처럼 맘몬의 교리를 시도 때도 없이 주워섬긴다. 대통령은 ‘관피아’를 척결하겠노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클로즈업 숏으로 눈물까지 흘리는데, 관피아를 척결하라고 등판시킨 구원투수 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로 몇 달 새 십수억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알려지자 조금 멋쩍어하는 눈치더니 그만 공 한 번 못 던져보고 강판당한다. 그러든 말든 ‘국민 타자’는 저온 치료 같은 최첨단 현대의학을 뛰어넘는 신기의 방망이질로 회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이를 모든 언론이 작두 타듯 대서특필(大書特筆)한 것에 비하면, 감히 살아보겠다며, 그 회장님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노조를 만들었던 노동자는 치도곤을 당한 끝에 삶을 마감하고도, 심지어 제 유언대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자기 육신을 탈취당하는 일이 벌어졌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 언론에만 나직이 소서평필(小書平筆)되고 만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다시 산재로 숨지고,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은 경찰이 쏜 최루액을 뒤집어쓴 채 최루액 때문인지 얼마 전 불에 타 숨진 장애우 때문인지 눈물에 콧물까지 쏟지만, 그 산재 사업장의 최대주주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서 복화술로 “안전 서울”을 외치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다가, 노숙인을 못 봤는지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척 위생학적 처리를 포기했는지 그냥 지나쳐갈 뿐이다. 그는 내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그런 식으로 외면하고 싶으나 제 피붙이가 지은 말의 죄가 있어 다만 신경을 쓰는 시늉 정도 하는 것과 달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순수’를 의심받으며 전문 시위꾼 취급을 당하다가 가슴속에 천불이 나서 그만 쓰러지고, 저 멀리 버스터미널과 노인요양병원에서는 진짜 불이 나서 다시금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앞에는 여태 듣도 보도 못한 장르인 ‘잔혹소극’(殘酷笑劇)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2014년 늦은 봄 한국 사회의 알레고리는 절대 픽션이 아닐뿐더러, 인터넷만 조금 뒤적거리면 금세 알 수 있는 정사(正史)다. 하지만 저들의 정사는 우리에게 야사다. 저들은 한껏 정색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분노하면서도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래서 저들이 진지할수록 우리는 삐딱해진다. 우리는 더는 불온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운명이다.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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