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0:20 수정 : 2014.01.07 10:45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이번호 최종 파일을 인쇄소로 넘겨야 하는 날, 바쁜 일손을 중단하고 1시간 동안 사내 양성평등 교육(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 해마다 받는 교육이지만, 강사가 던지는 ‘○× 퀴즈’는 매번 헷갈린다. 의무교육에 대한 관성적인 태도나 남성으로서의 낮은 성 인지성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이 성희롱이냐 아니냐는 물음의 구조는 수없이 복잡한 관계와 상황의 가변성을 이분법의 틀 속으로 욱여넣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데, 강사의 말이 귀에 꽂힌다. “중요한 건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과 그런 감정이 생기게 된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성희롱은 관계가 상황을 만나 발생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여기서 ‘관계’란 권력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직장 내 상하 관계뿐 아니라 성소수자를 포함한 성별 위계까지 아울러서 말이다. 제도화된 권력은 권력자에게 명확하게 인지돼 권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로 나타나지만, 비제도적인 권력은 상대에게만 인지된다. 후자의 경우 권력자는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을 무구한 존재로, 심지어 피해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인식이 진실인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고 제도화된 권력일수록 보이지 않는 비제도적 권력이 뒤따른다. 성희롱 사건은 이 두 범주의 권력이 상호 작동하는 전형이다.

불법·탈법적으로 권력질을 하는 이들일수록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이때 자신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공적 의제로 환원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과거의 대통령은 “죄라면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죄”밖에 없고, 현재의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용납할 수 없는 국론 분열 행위”로 규정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배임과 조세포탈죄를 저지르고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사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생각의 파노라마가 빠르게 넘어가는데 강사의 말이 다시 한번 귀에 꽂혔다.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즉각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사실 권력관계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제도 사이에서 빈틈없이 작동한다. 가령 운전대를 잡은 사람조차 동승자에 대해 권력의 우위에 서게 된다. 이번호의 적잖은 콘텐츠들이 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는 것도 그때문일 거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권력질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있는가. 피해를 입고 제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덕분에 마감에 많이 쫓겼지만, 이번 교육을 받기 잘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