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1:42 수정 : 2013.11.04 11:42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제헌절과 개천절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즉답을 할 수 있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은 뒤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나라의 헌법이 반포된 것과 한 민족의 하늘이 열린 것을 어떻게 헷갈릴 수 있느냐며 핀잔을 줘도 억울할 것까지는 없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는 물론 그 몇 배 분량의 ‘국민교육헌장’도 줄줄이 외우던 당대 초등학생에 나도 포함돼 있었다는 말은 빠뜨리고 싶지 않다. 사실, 제헌절과 개천절은 한자 뜻을 알지 못하면 그게 그것같이 들린다. 헷갈렸던 이유는 또 있다.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들을 몽땅 섞으면 무채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모든 공적 기념일은 쉬는 날과 쉬지 않는 날, 둘 중 하나로 환원되는 속성이 있다.

<나·들>이 창간 1주년이 되었다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해 장광설부터 늘어놓았다. 나라에서 지정한 기념일도 아니고, 독자들께 휴일을 드릴 수도 없다. 오래 연락을 끊고 지내다 불쑥 청첩장을 보내는 것처럼 언짢은 부담이나 안기지 않을까 두렵다. 다만 우리끼리만 자축하면 외려 무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독자들이 한 번 듣고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만 호들갑을 떨고 싶다. 큰 무게를 싣지 않은 덕담 한마디 듣고 싶은 욕심도 부려본다. 지난해 이맘때 “전생에 나라를 한 다스는 팔아먹은 것 같다”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뒤로도 어느 한순간 쉬웠던 적은 없지만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오는지도 모르게 돌을 맞았다.

돌이켜보니, 비치적비치적 걸으면서도 나름 또박또박 발자국을 찍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조금 대견스럽고, 묵묵히 일해온 동료들이 존경스럽다. 창간호에서 대통령 선거를 다뤘다. 따르르한 대통령 후보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지지 연설을 했던 청년 백수가 그 뒤 어떻게 남루한 삶을 살아왔는지 추적하고, ‘대통령과 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따져 물었다. <나·들>은 내내 그런 식이었다. 모든 사회 현안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려 했다. 어느 것 하나 다른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내용이 만들어진 건 정확히 계산한 결과는 아니었다. 다른 시선이 다른 이야기를 만들 뿐.

이번호를 만들면서 여느 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나 않았는지 걱정이다.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도 해봤다. ‘나들’이 발화의 주체가 될수록 이야기의 금기 영역은 줄어든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으려 한다. 눈 밝은 독자 여러분께서 알아봐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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