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2:37 수정 : 2012.12.28 02:37

살만 루슈디. 한겨레 자료
무척 조용하다. 누군가 이 대도시의 사운드트랙 볼륨을 0까지 완전히 낮춰버리기라도 한 듯. 영국 런던의 블룸즈버리 구역 베드포드 스퀘어는 그 옛날 편안했던 시절의 느긋함을 호흡하고 있다. 공원 주변으로 집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서 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스패니얼 품종의 애견 뒤를 따라 숨을 헉헉거리며 풀섶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무성한 덤불 속에서 몇몇 남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왼쪽에서 한 명, 오른쪽에서 두 명, 또 다른 한 명은 가운데에서 나와 곧바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모두 몸집이 탄탄한 검은 정장차림이다. 루슈디의 경호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슬쩍 농담을 건네본다. “여기서 살만 루슈디 작가와 만나기로 했는데….” 한데 이 사람들이 살만 루슈디가 누구냐고 되묻는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 누구냐고. 돌아온 대답인 즉, 런던 수도경찰청의 안전국 요원이란다. 졸업시험을 마친 대학생들이 오늘 이 공원에서 축하파티를 여는데,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한다.

 살만 루슈디가 누군가. 이슬람계의 유명한 수장 호메이니가 1989년 2월 14일, 100만 달러나 되는 현상금을 걸고 수배한 인물 아닌가. 영국의 특수정보국이 무려 10년 동안 이 은신처에서 저 은신처로 도피시켜야 했던 것은 영국 시민인 이 사람을 암살 명령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런던의 안전국 요원들에게 살만 루슈디가 도통 낯선 이름이라니 대학생들조차 안전국의 보호 조처를 받아야 하는 판에 말이다.

 살만 루슈디의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그와 만나기로 했다. 몇십 년 전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로 그의 발 밑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도망쳐 온 곳이 여기 와일리였다. 호메이니의 당시 주장은 이랬다. 

 “전세계의 독실한 무슬림 민족들은 들으라. 이슬람에 반대하고 예언자와 코란을 부정하는 책 <악마의 시> 저자는 물론이요, 이 책의 출판에 직간접으로 기여한 자들 모두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이슬람교도들이여, 이 자들을 전부 색출해 사형시킬지어다.”

 오늘 작가 루슈디는 와일리의 한 테라스에 앉아 있다. 그는 키가 별로 크지 않고 통통한 편이었다. 숨어 지내던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담아 700여 쪽의 <조지프 안톤-자서전>을 출간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낸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 세월 동안 목숨을 부지해온 것이다.

 

차이트(이하 차): 파트와가 선생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계셨습니까?

루슈디(이하 루): 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쯤 지난 뒤에 깨달았습니다. 외교관들의 노력이 다 무산되고 말았을 즈음에 말이죠. 그때 어느 고위급 경찰 간부가 제게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채 이렇게 무한정 지속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차: 끝없는 도망자 신세라는 뜻이었겠군요. 런던에서 인기작 <한밤의 아이들>로 도서상을 받은 작가가 정작 자신의 인생에서 추방된 셈입니다.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루: 끔찍했죠. 처음 2년간은 정말 위험했어요. 나 자신을 상실할 뻔했으니까요. 디프레이션 수위가 점차 높아지는 시기였지요. 책을 쓸 수도 없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명징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내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겁을 주었죠.

차: 살던 집도 빼앗기고 결혼 역시 파경을 맞은 선생님은 새 필명으로 조지프 안톤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루: 조지프 콘라드에서 조지프, 안톤 체호프에서 안톤을 따왔습니다.

차: 파트와는 한번 공표되면 취소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루: 종교적 해석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바로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라는 데 있습니다. 이란 정부가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내 신변 보호를 떠맡게 된 겁니다.

 루슈디는 숨어 사는 동안 수필집 <믿음으로>를 내어, 자신을 향한 비난을 진정시키고 이슬람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며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파트와의 특성상 발의한 당사자 이외에는 철회할 수 없는데, 호메이니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이란 성직자들은 기존 공표를 철회하지 못했다.

 9·11 테러 사태까지 초래했다고 이야기되는 <악마의 시>는 종교사적 요소, 동화와 신화적 요소, 그리고 꿈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반어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구절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아야톨라’라는 이름의 노인이 이야기 속에서 강박증 환자로 희화되는가 하면, 이른바 ‘무함마드의 여인들’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을 모아놓은 할렘도 등장한다. 어느 꿈속에서는 악마의 시가 코란의 현현으로 환호를 받기도 한다. ‘부커 프라이스’(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를 또 한번 수상하게 한 책이다.

 

차: 이 작품이 종교적 주제를 불손하게 반어적으로 다루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당시 종교가 이미 한물간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나요?

루: 그 말 그대로예요. 그때는 세상이 완전히 달랐어요. 레바논은 개방적이고 세속화된 사회였지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오리엔트의 파리’라고 말할 정도였고. 테헤란과 바그다드 역시 국제도시였어요. 종교적 광신주의는 당시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차: 얼마 후 곧바로 수정되어야 했던 순진한 의견이었죠.

루: 실수로 판명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죠(웃음).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내가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다는 걸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초고를 몇몇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보냈는데, 그중에는 에드워드 사이드도 있었지요.

차: <오리엔탈리즘>의 작가 사이드 말입니까?

루: 그가 “한바탕 시끄럽게 싸워보라”고 하더군요.

차: 그렇게 하셨습니까?

루: 물론이죠. 주요 주제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이는 것이야말로 책의 역할입니다. 말로 많이 싸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양쪽이 다 배우는 바가 있겠지요.

차: 상당히 서구적 관점이군요. 이집트에서는 진보 사상가 나스르 하미드 아부 자이드가 유배지로 쫓겨났습니다. 다른 문학 작품들처럼 코란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은 게 그의 결정적 실책이었죠.

루: 나는 인도에서 성장했습니다. 무슬림 집안이었죠. 인도 무슬림들은 전부터 탈종교화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차: 선생님 주변엔 친구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마르틴 마키스, 얀 맥이반, 줄리앙 반스, 수전 손태그 같은 이름들이 우선 떠오르는데요. 단결을 약속하고 각종 행사를 주선하는 것은 물론 선생님께 은신처를 제공했던 분들입니다. 선생님이 암살 위협을 받는 것이 이 지인들의 저술작업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루: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당한 일로 인해 우리들이 서로 좀더 가까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호메이니가 적으로 치부한 부류는 또 있다. 파트와가 선포한 소위 ‘전쟁 상대’를 살펴보면 출판사, 출판 담당자, 번역가, 서점 운영자들이 전부 여기 속한다. 다시 말해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일반 독자들에게 퍼뜨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파트와의 ‘언도’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영국의 몇몇 서점에서 폭탄이 터지는가 하면, 미국에선 출판인 피터 마이어가 신변보호를 위해 자택 연금 상태로 살아야 했다. 당시 뒤몽출판사의 소유자이자 출판인이던 라인홀트 네펜 드몽 역시 그때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자 여직원이 “사장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대요!”라며 공포에 질린 채 그를 맞았다. 그때부터 급히 테러에 대비한 조처들이 숨가쁘게 진행돼 우선 출판사 앞 도로를 폐쇄했다.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출판사 건물에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 곳곳에 장애물 기둥을 설치했다. 혹시 건물 밖에서 출판사 내부를 겨누고 총을 쏠세라, 저격수가 타고 올라갈 만한 건물 주변의 나무란 나무는 전부 베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악마의 시>를 번역하기로 한 여성 번역가가 손을 떼겠다고 한다. 출판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사람들이 그야말로 전례없이 획기적으로 ‘단결’, 새 출판사 설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출판사 이름은 ‘제19조’로 정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조항을 암시하자는 뜻이었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들의 명단만 해도 두 페이지에 달한다.

 번역자도 새로 구했다. 이름을 숨기고 일할 사람들이다. 조마조마했다. 덴마크인 번역자가 테러를 당했고, 일본인 번역자는 흉기에 찔려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루슈디의 자서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겪은 불안이나 그들의 용기 같은 건 별로 그려지지 않았다. 이 책에선 그가 인생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생략되어 있다. 예를 들어 럭비국립학교의 동급생들이나 케임브리지대학 동창들, 이혼한 전처들(모두 세 명이다)의 얘기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아주 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자서전은 작가가 혼자 소화해내지 못한 일들의 기록이라 할 수도 있다.

차: 사람들이 선생님을 ‘거만하다’, ‘사람을 의도적으로 자극한다’, ‘악마적이다’라고 공격하는데요. 이런 반응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생각이 좀 변했는지요?

루: 아닙니다. 오히려 거꾸로예요. 다른 사람들을 보는 내 관점이 변했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잘 안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공격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아, 아주 친절하시네요”라고 말할 겁니다.

차: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이 지금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들을 돌이켜 볼 때, 혹시 ‘그때 말을 좀 누그려뜨려서 하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루: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확실하게 배운 게 있다면 ‘절대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기본으로 삼으려는 가치가 있습니다. 이 가치는 내가 살기 바라는 사회, 일종의 열린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건입니다. 이런 가치에 관한 한 타협은 없을 것입니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바로 이런 가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나머지 다른 자유도 전부 사라져버립니다.

차: ‘살인자가 나를 죽이기 전에 차라리 자살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지요.

루: 없습니다. 게다가 내게는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는데요. 가족, 아내 엘리자베스와 아들….

차: 지금은 맨해튼 중심가에 거주하고 있는데….

루: 그렇죠.

차: 유니언 스퀘어에서 행사가 열리면….

루: 아니,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살아요.

차: 간혹 외출도 하시나요?

루: 전혀 안 합니다. 이곳 맨해튼의 택시기사는 전부 무슬림입니다. 나만 보면 사인해달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거든요.

차: 루슈디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 Die Zeit

주자네 마이어 Susanne Mayer <차이트> 문화 담당 기자

번역 장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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