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5:38 수정 : 2013.07.04 14:27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지난 6월호 마감으로 눈코 뜰 새 없을 때였다. 신경이 온 통 ‘나들의 초상’ 주제인 ‘투명인간’에 쏠려 있었다. 수유너머R 고병권 선생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저희 단체가 광화문광장 에서 밀양 관련해서 약식 기자회견과 침묵의 퍼포먼스를 하 려고 하는데, 취재를 부탁할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밀양 사람들도 투명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급한 건 마감이었다.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기름기 더깨마냥 떨어지지 않았다. 답장을 썼다. ‘그동안 저널리즘이 변죽만 울렸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따로 기획 취재를 해봤으면 합니다.’

7월호 ‘나들의 초상’은 밀양 이야기다. 약속을 지키자고 한 건 아니다. 그건 약속이랄 것 도 없을뿐더러, 밀양 당사자가 아닌 그는 약속 대상일 수도 없다. 고백하건대, 내 무지가 양심 에 찔린 것뿐이다. 여기서 ‘무지’란 밀양 사태의 개요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보수의 아성에서 그 토록 놀라운 싸움이 가능하다는 게 내겐 요령부득이었다.

실제 찾아가서 마주한 밀양은 놀라웠다. 투쟁 기간이 8년이거나 투쟁 주체가 어르신들 이라는 물리적 사실도 그렇지만, 더 경이로운 건 그 어르신들이 온몸으로 타전하는 메시지 였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스노비즘 사회에서도 끝내 화폐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저항으로 보여주는 급진적 주체이었다.

그동안 언론이 변죽만 울렸다고 한 내 판단은 옳았다. 밀양에 관해 보도해야 할 것은 바 로 사람이었다. 굴곡으로 점철되고 근기로 이겨낸 그곳 어르신들의 삶과 조상·공동체에 대 한 굳은 믿음 말이다. 밀양은 그 굴곡과 근기로 졸여진 보수주의가 가장 급진적 행동으로 표 현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아이러니의 현장이었다.

“돈 필요 없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여기서 그대로 살게만 해달라.” 서울내기 <나·들> 여 기자는 팔순의 김말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지금 한창 ‘전력 다이어트’ 중이다. 무엇보다 할머니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 나도 다시 한번 찔렸다.

이번호에는 밀양 김말해 할머니 말고도 전남 구례 두동댁(‘맨땅에 펀딩’) 이야기를 사진 과 함께 싣는다. 구례는 내 고향이기도 하다. 쪼글거리는 두 시골 할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겹 치면서 불현듯 고향이 걱정되었다. 아직은 평온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농촌에서 전쟁과 평화 는 백지 한 장 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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