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17:19 수정 : 2013.05.07 10:52

안영춘 편집장
얇고 가붓한 사전 한 권 펴내고 싶다. ‘연애 개념어 사전’. 우리는 연애 정보가 정보화 사회의 본질 행세를 하는 세상에 살지만, 연애에 관한 기본 개념조차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연애를 작위와 부작위로 보는 시각이 자기중심적으로 엇갈려 쓰인다. 여기에 도덕적 판단이 가세한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다. ‘바람피우다’와 ‘바람나다’는 작위-부작위의 양 경계에서 마주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도덕의 기준으로 개입한다는 점은 같다. ‘사귀다’는 바람피우다처럼 작위의 용례다. 다만, 도덕적 개입은 없다. ‘정분나다’는 어떤가. 남녀노소, 결혼·비혼, 성 정체성 등에 대해 도덕적 승인과 배제의 의지가 없다. 작위의 낌새도 없다. 어느 표현이 좀더 올바른지는 자명하다. 요즘 같은 연애 숭배 시대에 이 정도 언어적 긴장감은 있었으면 싶다.

5월이다. 자연에 기운이 넘친다. 부러 의식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연애하기 좋은 시절이다. 이번호는 ‘연애’를 놓고 길게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그러나 세태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고 출발했다. 가장 사적인 본성이 마주쳐 벌어지는 사태가 연애일진대, 오늘날 연애는 국가가 발급하는 시민권처럼 체제화되었다. 시민권은 누구나 가져야 하고, 가질 수 있다는 신화 위에서 정당화된다. 연애를 안 하면 비정상이다. 조금만 가꾸고 노력하면, 거기에 약간의 비용만 들이면 아무나 연애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권은 아무나 취득할 수 없을 때 가치가 있다. 고대 아테네는 여성과 노예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연애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은 연애에 무능해서가 아니라 유·무형의 장벽에 의해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연애를 하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나·들>이 연애 이야기를 하는 건 한가해서가 아니다. 선정성으로 책을 팔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오히려 제법 묵직하기까지 하다. 연애는 개인에서 시작하기에 인권의 이슈이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파생하는 윤리의 이슈이며, 인간의 가장 보편적 본성에 대한 철학의 이슈이기도 하다. 특히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의 연애는 이 개별자들의 몸과 마음이 타자의 그것과 마주쳐서 형성될 수 있는 사유와 실천의 진경을 보여준다. 이번호에서는 그 지식인들의 이야기에 각별히 주목했으나, 한편 엘리트주의로 오해하지 않을지 우려도 했다. 그들의 연애는 그들이 가진 지적 자본과 발언권 등에 의해 널리 알려진 것이지, 그들의 연애만 고귀해서는 아니다. 장삼이사의 귀한 연애 이야기들을 다루려 했으나 당사자들이 간곡히 사양해 뜻을 접었다. 그들의 연애를 지지한다.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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