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5 10:38 수정 : 2013.03.05 10:38

안영춘 편집장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려면, 다음 문장보다 좋은 글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느 때보다 ‘편집장의 편지’가 쓰기 싫다.’

얼마나 솔직한가.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라고 들어봤나.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라는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이 글은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고 있는 글이다. 이런 글이 좋은 글일 수 있는 역설은 이 경우 성립할까, 성립하지 않을까.

월간지를 만들다 보면 한 달 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이번 호는 유독 그랬다. 책상물림이어야 할 편집장이 스리쿠션 끝에 200자 원고지 140장쯤 되는 기사를 몸소(?) 취재해 쓰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 나는 몸도 마음도 텅 빈 곳간이다. 대체 뭘 쓰면 좋을까.

황보연 기자가 ‘기사를 많이 써서 기쁘다’라고 쓰란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쓰면 좋은 글이 나올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는 셈이니까.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아가며 글감을 찾는데, 어제 야근을 앞두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와 벌인 논쟁이 떠오른다.

‘쿨(Cool)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쿨한 주제를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제법 길게 오간 공방 끝에 최소 합의에 도달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쿨하지 못하다.’

‘쿨’을 놓고 논쟁(무엇이 ‘쿨’인가)이든, 내기(누가 더 ‘쿨’한가)든, ‘열전’을 벌이는 자는 쿨할 수 없다는 데 쿨하게 공감한 것이다. 말장난처럼 비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쿨’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진술이다. 의지나 욕망의 대상으로서 ‘쿨’이 가당키나 한가. ‘쿨’은 애초 텅 빈 기표, 아니 역설로 가득 찬 역설의 자기 증식 기계라는 혐의가 짙다. 쳇, 쿨 따위!

다른 후배를 붙들고 뭘 쓰면 좋겠는지 다시 물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했으니 그걸로 써보란다. 그래, 쿨하게 외면하기보다 솔직해지자.

나는 새 대통령에게 모순감정을 품고 있다. 그가 잘 못하기 바라는 마음과 잘하기 바라는 마음.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결코 내 이익을 대변할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러나 잘못하면 ‘후폭풍’은 정작 우리가 맞을 테니까. 답은 하나다. 그가 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 된다. 그것이 뭘지는 심신을 회복한 다음 궁구해봐야겠다.

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글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억지로 써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좋아서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충분조건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함과 쿨함 사이를 배회하다 보니 어느새 분량을 다 채웠다.

안영춘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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