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인터뷰(전체기사수 : 84개)

  • 근친교배 문학계의 별종작가[10호]
    여류 소설가 정유정은 지금 한국 문학계의 대세이지만, 문단 어디에도 온전히 ‘배치’되지 않는다. 이미 변별력이 다한 것으로 간주되는 ‘순수-참여’의 구도는 그렇다 쳐도, 그가 대중소설 ...
    2013-08-06 11:07
  • ‘팩 저널리즘’ 타파이즘[9호]
    ‘저널리즘이 위기다’라는 말은 어느덧 진부하게 들린다. 위기론이 등장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그러나 세월 탓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 말에서 언론이 자초한 ‘신뢰의 위기’를 떠올...
    2013-07-03 15:31
  • 나는 비로소 기자가 됐다[9호]
    어떤 직업인을 만났을 때 꺼낼 수 있는 가장 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당신은 왜 그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일 것이 다. 나 역시 그랬다. 1996년 1월 에 기자로 입사하고 나서 많은 질문을 ...
    2013-07-03 14:47
  • 골대 상관 않고 팩트 찾는 타파들[9호]
    지금은 세상을 떠나 세인의 기억에서 잊혀버린 시인 중에 이광웅 선생이 있다. 이분이 쓴 ‘목숨을 걸고’라는 시에는, ‘이 땅에서 진짜 시인이 되려면 목숨을 걸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유명...
    2013-07-03 14:39
  • 유희로 무장한 채 놀러 온 여자 사람[8호]
    10년 전,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우연히 본 희한한 아가씨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개와 함께, 개털과 똑같은 색깔의 모피 코트를 입은 그 아가씨는 나와 목적지가 같았다. 인사동의 ...
    2013-06-06 12:00
  • 주체가 된 팝아티스트[8호]
    낸시랭을 인터뷰하려 한 건 지난해부터 보여준 그녀의 행보 때문이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이라면 굳이 인터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작품을 보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낸시랭을 ‘예술 ...
    2013-06-06 11:58
  • 변 같은 얘기 “안할 거예요”[8호]
    낸시랭의 정체성은 뭐죠? “굳이 정체성 같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요. 큐티, 섹시 키티, 낸시! 큐티도 있고, 섹시도 있고, 키티도 있고, 우리 낸시도 있는 거죠. 이를 한마디로 줄인 말이 ...
    2013-06-06 11:55
  • 저들은 ‘낸시랭 콤플렉스’에 빠졌다[8호]
    ‘어쩌면 이번 일은 21세기와 19세기가 마침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지점에서 벌어진 사태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외설을 드러낸 것은 님이 아니라 저들이고, 이번에야말로 저들은...
    2013-06-06 11:30
  • “난 센강에서 소멸했을 존재,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산다”[7호]
    나는 운이 좋았다. 기억 없는 어린 시절, 전쟁과 학살과 증오의 땅에서 못 먹고 병들어 죽은 내 동생과 달리 나는 살아남았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 억울한 사정들은 죽음과 함께 묻혔...
    2013-05-06 22:10
  • ‘사유하는 주체’ 외치는 근대인 [7호]
    ‘홍세화’라는 이름 석 자 뒤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그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궤적이기도 하다. 파리의 택시운전사에서 한겨레신문사 기획위원, 그리고 진보신당 당대표를 거쳐 지금은 ‘가...
    2013-05-06 22:05
  • “학습 부족했다 진보여 반성하라”[7호]
    연기가 성운처럼 우아하게 꽈리를 틀며 피어오른다. 그의 손에는 알베르 카뮈가 애용하던 철쭉 뿌리 재질의 담배 파이프가 들려 있다. 능숙하게 빨아들이고 내뿜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카뮈의...
    2013-05-06 21:58
  • 주입식 진보에 종언을 고한다[7호]
    2002년 영구 귀국했을 때, 홍세화는 책상다리로 앉는 걸 힘들어했다. 그러나 다리 관절과 근육의 불편함은 사소한 것이었다. 이후 10년, 그는 한국 사회와 내내 긴장했다. 보수 진영과의 ...
    2013-05-06 21:49
  • “왜 안 오노? 네가 기록해야지”[6호]
    지율 스님을 처음 본 건 2005년 1월이었다. 그날 공기는 몹시 맵찼다. 스님은 청와대 인근 효자동의 깊은 골목 안쪽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로 79일째였다. 그...
    2013-04-03 17:44
  • 막개발법 거부하고 생명의 법 다시 외치다[6호]
    지율 스님. 그 이름은 ‘천성산 도롱뇽 소송’이라는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
    2013-04-03 17:39
  • 뫼에서 내로 세속에 나온 비구니[6호]
    “그의 아버지가 처음 모래를 채취하던 때나 그때나 강은 별다르지 않았다. 강은 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 안에 언제든 하류로 싣고 갈 수 있는 유동적인 바닥을 품었으며 그 바닥이야말...
    2013-04-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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